현재 마이산 탑사 경내에는 80여 기의 돌탑들이 있다.
처음에는 108기의 돌탑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동안 관광객들의 훼손으로 일부가 없어져서
80여 기만 남아 있는 것이다.
이곳의 돌탑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똑같은 크기의 돌들을 첩첩이 수십 개 쌓아 올린 외줄탑이고,
다른 하나는 크고 작은 돌들로써 3~4미터 높이의 기단부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외줄 탑을 세워 놓은 피라미드형 돌탑이다.
돌탑의 높이는 사람의 키보다 조금 높은 것도 있지만
대부분 10여 미터, 어떤 것들은 20여 미터 정도가 된다.
돌의 크기는 두 손으로 안으면
가슴에 완전히 들어오는 자그마한 것에서부터
두 팔로도 다 껴안을 수 없는 것들까지 다양하다.
그렇지만 조그만 것들도 아주 무거워 혼자서 들기는 어려우며
큰 돌은 감히 들어 올릴 엄두도 내지 못한다.
사람도 제대로 딛고 설 수 없는 절벽에도 이런 탑들이 쌓여져 있고
100여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이 탑들이 결코 쓰러지지 않았다.
특히 여름철 태풍이 불어오면
옆 언덕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웬만한 나무는 뿌리째 뽑혀 나가지만
돌탑들은 조금씩 흔들리기만 할 뿐 쓰러지지 않는다.
하도 신기해서 20여 미터나 되는 돌탑의 아랫부분을 세게 밀어보았더니,
돌탑의 윗부분만 조금 흔들릴 뿐 전혀 이상이 없었고,
그 흔들거림이 손으로 전해 왔을 때
강한 기가 돌탑에서 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수십 개의 돌들이 아무런 접착물 없이 서로 맞닿아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놀라운 돌탑의 축조비법은 무엇이고
100년 풍상을 견뎌낸 돌탑의 신비는
과연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현상을 연출한 것은
놀랍게도 한 인간의 정신력이었다.
이갑룡 처사와 신서.
본명 이경의(李敬議), 자 갑룡(甲龍), 호 석정(石亭).
마이산 인근 지역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
기억되는 그를 이곳 사람들은 그냥 이갑룡 처사라고 부른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를 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마이산 돌탑의 비밀을
캐내는 것이며, 100여 년 전 이 땅에서 살다간
우리의 한 뛰어난 정신을 만나는 셈일 것이다.
그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이갑룡 처사는 1860년 전북 임실군 둔남면 둔기리에서
전주 이씨 효령대군 16대손으로 태어났다.
어려서 준수한 용모에 나이에 비해 숙성했고
범상치 않은 언행으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더욱이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의 임종 직전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마시게 하여 석 달을 더 사시게 했다고 한다.
또 그는 아버지가 세상을 뜨자 출상 때까지 식음을 전폐했는가 하면
3년 시묘동안 솔잎으로 연명하며 잠시도 묘 옆을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묘를 지키는 3년 동안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산의 영기를 가까이 하면서
시묘를 마친 그는 법도를 찾아 그 뒤 명산대천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때 나이 19세, 백두에서 한라까지 전국의 명산을 돌아다닌다.
6년간에 걸쳐 그의 방황과 순례의 생활은 계속된다.
25세 되던 해.
명산대첩의 영묘함도 지울 수는 없었지만
어지러운 세상에서 중생을 구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라고
여긴 그는 유불선(儒佛仙)에 바탕을 둔 용화세계(龍華世界)의 실현이 이상적이라고 믿고
마이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산신의 선몽으로 마이산에 들어간 그는
맹수와 독충이 들끓는 돌산 언덕받이 아래에서
심령을 가다듬기 위하여 홀로
망상처럼 앉아 고행과 기도로 점철된 수도생활을 시작한다.
생식으로 끼니를 잇고 나막신으로 가파른 마이산을 오르내리며
얇은 무명옷으로 삼동의 혹한을 배겨내다가
입산 뒤 일 년 만에 깊이 깨달은 바 있어 유도의 윤리 도덕과
불교의 명심견성, 그리고 선도의 연심정기를 근본으로
도를 닦아 만인의 속죄를 빌고 억조창생을
구원할 목적으로 돌탑을 쌓기 시작했다.
세속과는 완전히 등진 채 낮에는 돌을 나르고
밤에는 기도 하며 탑을 쌓기 30여 년.
마이산 돌탑의 재료인 돌은 마이산에서 30여 리 안에 있는
산의 돌들을 주로 이용했으나
주요 탑들에 들어가는 커다란 돌들은
전국의 명산 각지를 순례할 때 그곳에서 기도를 한 후
망태기에 담아서 메고 왔다고 전한다.
명산으로부터 마이산까지의 먼 길을 그는 단숨에 왔다고 하는데
이때 축지법을 썼다고 한다.
특히 이런 돌들을 가지고 탑을 쌓기 위해
그는 초저녁엔 기도를 하고 자시가 되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
돌 하나씩만 쌓았다고 전한다.
한번은 주변 사람들이 그가 어떻게 탑을 쌓는지 몰래 구경하려고
탑사 구석에 숨어있었는데
자정이 다가오자 모두들 자기도 모르게
잠에 빠져 버렸다고 전해진다.
이것은 이갑룡 처사가 아무도 구경을 못하게 하기 위해
신통력을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깜빡 자다가 눈을 떠보니 어느새 그 높은 돌탑 위에는
커다란 돌 하나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때 그가 돌을 올려놓은 그 장소에는
돌들 말고 나무 구조물 등 아무 보조물들이 없었다고 한다.
이갑룡 처사는 1957년 마이산 연록인 봉두봉 임좌 언덕에 묻힐 때까지
98년 동안을 살면서 숱한 예언과 기행을 했다.
유자 기름에 튀겨 금색처럼 보이는 금 나막신을 신고 경사가 거의 직각인
수마이봉을 아무런 장비도 없이 아침저녁으로 올라 다녔고,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의 머리가 서로 외면하고 있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조화시키려고 1896년 여름 두 마이산의 머리를 명주 18필로 연결시켰다.
그리고 평소에는 보통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먹지 않고
소량의 생식만을 하였으며 항상 호랑이를 옆에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일제 말 그의 나이 80살 때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그를 전주에서 만났다는 사람이 버스를 타고 진안으로 왔는데
어느새 그는 버스를 앞질러 마이산에 먼저 와 있더라는 것이다.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갑룡 처사는 '그냥 걸어서 왔지' 하고 태연히 대답하고 돌아섰다는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앞으로 이기지도 지지도 않는 전쟁이 터져
많은 인명피해가 있을 거라고 예언하기도 하고
부귀다남이라 해서 아들 딸 많이 둔 것이 지금은 자랑일지 몰라도
앞으로는 수치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몇 만 리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때가 올 것이며,
언젠가는 한번만 쓰고 버리는 세상이 오고 자기가 버렸던 물건들로 인해서 그 오물을
자기가 뒤집어쓰게 될 것이며,
조선이 지금은 일제의 압박에 시달리지만 앞으로 동양에서
제일가는 부국이 될 것이고,
앞으로는 적어도 서너 지 말을 해야만 대접받게 된다는 예언 등
많고 다양한 예언들을 했다.
그는 자신이 죽을 시각을 알고 자기가 묻힐 곳까지 지정해 주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그를 매장하기 위해 지정해 준 장소로 가 보니
사방이 온통 바위여서 다른 장소를 잡아 매장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상주를 비롯하여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이
그분이 자신의 묏자리를 아무 곳에나 정하실 분이 아니라면서
그 바위 틈새를 비집고 파보니 오색찬란한 흙이 나왔다.
후에 내노라하는 유명한 지관이나 풍수관들이 그의 묘를 보고
과연 이갑룡 처사가 정할만한 명당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한다.
이갑룡 처사는 돌탑의 축조를 완성한 후에는 주로 수도와 기도 생활로 일관했는데,
그의 나이 육십이 넘자 틈틈이 글을 써서 30여 권에 이르는 책들을 남겨 놓았다.
그가 시도하면서 영의 계시를 받아썼다는 이 책의 글자는
그가 이 신서를 남긴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그 뜻을 풀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일체의 세속 문자를 배운 적도 사용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해서
이런 3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서적을 남길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는 죽기 전
'앞으로 영에 통달한 사람이 나오면 이 글을 알게 되고
이 글을 해독하게 되면 제세의 비법을 알게 될 것이므로 소중히 간직하라'
고 유언을 했다고 한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얘기들이지만 이런 것들은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를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서 지켜봤던 그곳 사람들의 생생한 증언이다.
특히 그가 영의 계시를 받고 남겼다는 신서는 대부분 분실되고
현재 마이산 탑사에 두 권만이 보관되어 내려오는데
아무리 해독하려고 해도 도무지 알 수 없는 글자들이었다.
이갑룡 처사의 예언대로 앞으로 영에 통달한 사람이 나와
그것을 해독할 날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갑룡 처사의 손자 되는 이왕선 씨에 의하면
이 처사는 이 글이 자기로터 4대 손에 의해 해독될 수 있다는 암시를 줬다고 하는데
이갑룡 처사의 4대손은 이제 갓 돌을 지난 갓난아기이다. (이제는 성인이 됐을 터인데..)
역 고드름 현상.
이 처사가 세워 놓은 돌탑아래 정한수를 떠놓고 소원을 비는 기도를 드리는데
그 기도의 정성이 지극하면 그 정한수 밑면에 이 처사가 썼던 신서가 선명하게 비친다고 한다.
특히 날씨가 추운 한겨울에는 이 정한수 위에 고드름이 생기는데
물그릇 안의 물이 얼면서 고드름이 역으로 위를 향해 치솟는다는 것이다.
마이산 탑사에 가면 그럼 역 고드름 현상이 찍힌 사진을 볼 수 있는데 믿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실증하는 사진을 믿지 않을 수도 없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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