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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일강리도

얼 골 2018. 5. 17. 16:23


 

큰사진보기강리도 남아프리카 오렌지 강 진왈라 여사는 이 지도가 1389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더욱 놀랐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양인이 그린 아프리카 지도보다 무려 100년 이상 앞선 게 아닌가. 여사는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바로 민주 남아공 국민의 새로운 정체성을 위한 매체를 발견한 것입니다.

서양인이 그린 옛 아프리카 지도는 아프리카인들에게 침략과 착취, 식민지화와 노예의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앞선 대명혼일도는 전혀 다른 함의를 담고 있습니다. 이 지도는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아프리카인들이 다른 세계와 평등한 관계를 맺고 교류했던 역사의 증언으로 읽혔던 것입니다. 과거의 족쇄를 벗고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던 여사는 지도에서 길을 찾은 것입니다.

남아공 국회 천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지도 전시회를 열게 된 배경이 그렇습니다. 전시회에 대명혼일도를 소개하기 위하여 진왈라 여사는 중국 측과 외교적 교섭을 통해 복제품을 입수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그때 여사가 강리도를 또한 찾아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은 관련 기록입니다. 

"(상세한 대명혼일도에는 오히려 나와 있지 않지만) 강리도에는 아프리카 남부 서쪽의 대서양으로 흘러가는 강까지 그려져 있다. 이는 오렌지강과 상응(correspond)한다. 대서양 쪽에 담겨있는 이러한 상세 지리 정보는 오로지 희망봉을 돌았던 사람들에게서 나왔을 수밖에 없다. (중략) 남부 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이러한 지리 지식은 정화의 항해보다도 앞선 것으로서, 강리도와 대명혼일도가 던지는 가장 큰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남아공 국회가 강리도의 소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일본 정부의 도움 덕분이었다. 고 오부치 총리(당시 전 총리)가 강리도 사본을 국회의장에게 제공해 주었던 것이다." (출처: http://archive.li/5l9rD)

▲ 강리도 남아프리카 오렌지 강 우리는 이 대목에서 이런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우리나라는 중국이나 일본처럼 강리도를 통해 남아공에 문화 친선 외교를 할 생각을 안 하는가(강리도 모사본이 서울대 규장각에 있다). 왜 우리나라에는 진왈라 국회의장 같은 인문지리학적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가 없는가(독일의 메르켈도 지도 외교를 종종 벌였는데, 2014년 시진핑에게 18세기 중국지도를 선물했다). 남아공과 일본이 우리의 강리도로 문화 외교를 벌일 때 왜 우리는 눈을 감고 있었으며 지금도 눈을 감고 있는가.

이런 의문을 뒤로 하고 이 기회에 대명혼일도에 대하여 좀 살펴 보겠습니다. 이 지도는 비단 바탕에 그린 것으로서 347cmx453cm의 대형 지도입니다. 강리도(150cmx163cm)의 6.4배의 크기입니다. 중국의 제일역사당안관(第一 歷史檔案館,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한편 일본 교토대는 2006년 중국측의 협조를 얻어 원본 크기의 복사본을 입수하여 연구 중이라 합니다(교토대 미야 노리코). 지도 전체에서 보이는 하얀 눈송이 같은 것은 청나라 시절에 각각의 지명에 만주어 지명을 붙여 놓은 비단 메모 쪽지입니다.

대명혼일도와 강리도가 담고 있는 세부 지리정보는 동일하지 않지만 얼른 보아도 세계상의 구도는 동일합니다. 단지 대명혼일도는 동쪽의 한반도가 강리도에 비해 엉성하고 결함이 많으며 서단의 아프리카도 왼쪽이 잘려 나간 모습입니다. 전체적으로 강리도가 완성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대명혼일도에서 인도는 강리도의 그것보다 식별이 용이하나 만리장성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아프리카의 형상과 중앙의 거대 호수 및 나일강의 모습은 두 지도가 유사합니다. 단지 대명혼일도의 아프리카 남부에서는 오렌지강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남부 대명혼일도
▲ 아프리카 남부 대명혼일도
ⓒ 김선흥

 


조상들은 오렌지강을 어떻게 그렸을까

오렌지강에 대하여 좀더 살펴 보겠습니다. 강리도보다 6배 이상 큰 대명혼일도에 나타나 있지 않은 오렌지강이 강리도에 그려져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뿐더러 당시 이슬람 지도는 물론 서양 지도에서도 오렌지강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서양의 기념비적인 지도인 1502년 칸티노(Cantino)지도(유네스코 등재)에도 오렌지강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칸티노 지도(1502) 남아프리카 오렌지 강 부근
▲ 칸티노 지도(1502) 남아프리카 오렌지 강 부근
ⓒ wiki commons

 


나그네(필자)가 조사해 본 바로는 서양에서 오렌지강을 최초로 그린 지도는 '아메리카의 출생 증명서'로 불리는 1507년의 발트제뮐러 지도로 보입니다(아래 부분도의 붉은 화살표, 당시에는 '오렌지강'이라는 이름이 없었으며 이 지도에서는 Rio de magdalena라고 명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발트제뮐러 지도 오렌지 강
▲ 발트제뮐러 지도 오렌지 강
ⓒ wiki commons

 


결론적으로 남아공의 오렌지강을 사상 최초로 그린 지도는 조선의 강리도임이 거의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대명혼일도의 제작시기에 대한 문제입니다. 대명혼일도가 등장하기 전에는 강리도가 아프리카를 최초로 제대로 그린 세계지도(당시 기준)로서의 독보적인 위상을 누려 왔습니다. 중국 학자들의 주장처럼 대명혼일도가 1389년에 제작된 것이라면 강리도보다 13년 앞섭니다. 하지만 대명혼일도의 제작자는 미상이며 제작시기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작 연도에 대하여 학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측에서는 거의 이구동성으로 1389년이라 주장하고 있는 반면에 서양 학계에서는 대체로 16세기 제작설에 기울어져 있습니다. 우리 국내 학자들의 의견은 혼재되어 있는 가운데 오상학 교수(제주대)는 중국의 1389년도 제작설을 논박하고 있습니다( 오상학,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의 최근 담론과 지도의 재평가, <2016 국토지리학회지 제50권 1호>).

조선의 강리도와 중국의 대명혼일도. 두 지도의 차이점을 살펴보는 일은 필요할 것입니다. 연구가들의 몫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이점에 매몰되다 보면 두 지도가 공유하고 있는 보다 본질적인 가치를 간과할 수 있습니다. 

두 지도는 모두 몽골 세계대제국의 유산으로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열린 세계상과 경계가 없는 드넓은 시야, 두 지도의 명칭이 공유하고 있는 '혼일(혼융)'의 함의가  그것입니다.

원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한 것은 중국이고 이를 융합하여 보다 완성된 세계지도를 만든 것은 조선입니다. 상호 의존적이고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이제 여기 지도와 인간사에서 의도적으로 미루어 왔던 질문 하나를 마주할 때가 되었습니다.

강리도에 서양보다 훨씬 먼저 그려진 아프리카는 도대체 어떤 정보와 자료에서 나왔는가? 그 원천 정보는 무엇이며 어떤 내용인가? 다음 호에서 탐험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