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 골 2016. 2. 12. 11:37

1988년 독일 바이엘 레버쿠젠 선수일 당시 두번째로 유럽축구연맹 ( UEFA ) 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차범근. (사진-중앙 포토DB)
"차붐이 그렇게 대단했나요?"

차범근(63) 전 수원 삼성 감독이 '세계 축구의 전설'에 선정됐다는 기사에 한 네티즌이 댓글을 쓰며 이렇게 물었다.

차 감독은 지난 10일(한국시간)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IFFHS)이 발표한 '축구 전설 48명'에 포함됐다.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펠레(76·브라질), 디에고 마라도나(56·네덜란드), 프란츠 베켄바워(71·독일), 지네딘 지단(44·프랑스) 등 세계 축구사를 수놓은 별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차 감독은 현역 시절 독일 분데스리가를 주름 잡은 공격수였다. 1978년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아이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레버쿠젠을 거친 그는 지난 1989년 그라운드를 떠날 때까지 약 10년간 308경기에 출전해 98골을 터뜨렸다. 이 골 수는 당시 외국인 선수 최다골(현재 6위)이었다. 차범근의 폭발적인 골 결정력을 본 독일 언론은 범과 발음이 비슷한 붐(독일어로 폭발음을 나타내는 의성어)을 따 '차붐'이라고 불렀다.

기사 이미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동할 당시 차범근 (사진-중앙 포토DB)


차범근의 전성기는 1980년대 중반으로 평가된다. 유럽 리그 한 시즌 한국인 최다득점 기록인 19골을 넣은 1985-1986시즌은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당시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TV도 드물었다. 케이블채널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나 등장할 법한 손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다.

축구팬들이 즐겨보는 '활약 엑기스' 혹은 '골 모음' 같은 하이라이트 동영상은 상상할 수도 없다. 20~30대 축구 팬들에게 차붐은 그저 '두리 아빠'로 통한다. 지난 시즌 FC서울에서 은퇴한 차두리(36)의 덕분이다. 그라운드 위의 차붐을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한 이들에게 그 명성이 쉬 믿어지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차붐의 영향력을 확인할 방법은 있다. 바로 문학 작품 속에서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이자 작가인 에크하르트 헨샤이트(75)는 지난 1980년 '차범근 찬가(Hyumne auf Bum Kun Cha)'를 공개해 차붐의 축구에 찬사를 보냈다.

축구 팬인 그는 지난 1979년 프랑크푸르트 입단과 동시에 12골을 몰아친 동양인 선수에 매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한 편의 시는 총 10개의 연(聯), 5500여 자 분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차붐과 그의 조국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헨샤이트는 이 시에서 '차붐, 동방에서 온 친구여, 그대는 더이상 이방인이 아니라네. 독일은 그대의 제2의 고향' '용맹한 코리아여, 그대들이 우리에게 차붐을 보냈도다' 등 차붐과 한국에 대한 감사의 뜻을 노래했다. 또 다른 연에서는 '당신의 플레이를 처음 본 순간 우리의 심장은 마법에 걸렸노라' '흑백 축구공의 노련한 예술가 차붐이여'라며 찬사를 보냈다. 그는 차범근의 축구를 예술과 동일시 했다.

헨샤이트는 무엇보다 차붐의 페어플레이 정신을 높게 평가했다. 차붐은 분데스리가 308경기에 나서며 단 1장의 옐로카드만 받을 만큼 페어플레이를 펼친 것으로도 유명하다. 헨샤이트는 또 '페어플레이 정신은 차범근의 종교' '내 삶이 끝나는 순간까지 당신을 찬양하고 싶소'라고 읊었다.

기사 이미지
차범근의 데뷔전을 크게 보도했던 서독 신문들 (사진-중앙 포토DB)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의 서부지역 편집장 프랑크 루셈(56)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헨샤이트는 독일의 지식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유명한 작가"라며 "그가 지은 '차범근 찬가'는 원래 시인 프리드리히 고틀리브 클롭슈토크가 1750년 발간한 시집 '데어 취이셔제(Der Zürchersee)'를 토대로 개사했다"고 설명했다.

루셈은 독일 대표적인 축구 저널리스트다. 지난 1980년 독일 축구전문지 키커에 입사한 그는 차붐의 독일 시절을 취재하기도 했다.

루셈은 "전성기를 지난 1980년대 후반의 차범근은 늘 나에게 '경험 많은 선수의 무기는 경험'이라고 말했다"며 "철저한 자기 관리를 이어 온 그는 말처럼 꾸준한 경기력을 과시했다. 지금도 프랑크푸르트나 레버쿠젠에선 '국빈급 대우'를 받고 있는 이유"라고 했다.

피주영 기자

기사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