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서옹스님 사리

얼 골 2017. 10. 24. 13:11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 사리

 

 

 

 

 

지난 19일 다비식을 치른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당(西翁堂) 상순(尙純) 대종사의 법체에서 나온 사리. 4과(顆) 모두 백옥빛을 하고 있으며 2과는 쌀알보다 약간 크고 나머지는 작다.

서옹스님 '坐脫立亡' 장면공개

전남 장성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이 13일 밤 좌선하는 자세로 입적(좌탈입망ㆍ坐脫立亡)한 장면이 15일 공개됐다. 밝은 황토색 바지와 적삼을 입은 스님은 왼 발을 오른 발 위에 올리고 오른 손을 왼 손 위에 올리고 있다. 장의위원회는 앉은 모습 그대로 입관해 19일 백양사에서 다비식을 치를 예정이다.

 

‘좌탈입망’은 참선 수행을 오래 한 선승 가운데서도 드물게 보는 일로 높은 법력(法力)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가까운 예로는 지난달 22일 세수 90세로 입적한 태고종 전 종정 덕암(德菴) 스님이 있었다.

 

덕암 스님은 수행의 경지가 높아 태고종 내에서는 조계종 전 종정 성철(性徹) 스님과 비견되기도 했다. 근세 고승 가운데 오대산 상원사 방한암(方漢巖) 스님의 좌탈입망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서옹 스님의 은사였던 송만암(宋曼庵) 스님도 좌탈입망했다.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

 

[떠나고 남기고] 성철스님 이후 최고 禪師 백양사 방장 서옹스님 "이제 가야겠다" 하시더니 앉은채 열반 간디자서전 읽고 불교접해 고교졸업때 출가

2003년 12월
13일(토요일) 입적한 백양사 방장 서옹(西翁) 스님은 성철(性徹) 스님 이후 최고의 선사(禪師)였다.

스님은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백양사 설선당(說禪堂)에서 아침 죽 공양을 하고 오후에 상좌 스님들과 법담을 나누며 후학들의 정진을 격려했다. 스님은 저녁에 주지 두백 스님 등에게 “이제 가야겠다”고 말한 뒤 앉은 자세로 좌탈입망(坐脫立亡)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님은 임종 직전까지도 오랫동안 시중을 들어온 시자 호산 스님과 선문답을 주고 받는 선장(禪匠)의 면모를 보였다. 백양사측이 전한 그 모습은 이랬다. 서옹 스님이 일렀다.“호산. 호산. 동서남북에서 눈 밝은 사자새끼가 나온다. 동서남북에서 용맹스런 사자새끼가 나온다. 호산! 속히 일러라. 속히 일러라.”호산 스님이 벽력같이 할(喝)을 했다. 서옹 스님이 말했다.“발 밑을 보아라.”두 사람은 마주앉아 빙그레 웃었다.

 

1912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스님은 양정고보에 다니던 열 일곱 살 때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한 해에 돌아 가신 데 절망하다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무교회주의자였던 김교신 선생의 영향으로 마하트마 간디 자서전을 읽으며 불교와 접하게 됐다. 주변에서는 경성제대 예과에 갈 것을 권했으나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1932년 양정고보를 졸업하던 해에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서옹 스님은 오대산 상원사 한암 스님 문하에서 탄허, 고암, 월하 스님과 함께 본격적 참선 수행을 시작했으며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에서 2년, 일본 임제종 묘심사파에서 운영하는 교토 임제대학에서 2년 동안 근대식 교육을 받았다.

 

귀국 후 백양사 해인사 동화사 파계사 봉암사 등을 돌며 공부와 수행을 계속했으며 62년 동국대 대학선원장을 지냈고 천축사 무문관, 동화사, 봉암사 등의 조실로 수좌들을 지도했다. 스님은 늘 수좌들에게 “순수하면서도 용맹스럽게 하라”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바치는 듯한 자세로 공부하라고 강조했다.

또 기회 있을 때마다 “수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화두를 들고 정진하는 게 가장 간단하고 병폐도 없다”며 참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스님은 1967년 어느 날 백양사 쌍계루 아래 돌다리 사이로 흐르는 물살을 보고 문득 대오하여 전에 없던 초탈의 경지를 맛보았다고 한다.

 

스님은 74~78년 조계종 5대 종정 재임 때 ‘부처님 오신 날’이 공휴일로 제정된 것을 보람으로 여겼다. 이후 줄곧 백양사에 주석했으며 96년부터는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으로 후학들을 지도했다.

 

스님은 특히 말년에 “종교적 생명력이란 허무한 인간을 극복하고 초월하여 자기 밑바닥에 있는 참다운 인간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라며 백양사에 참사람 수련원을 개설하는 등 ‘참사람 운동’을 펼쳤다. 4월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 스님이 찾아왔을 때도 임제 스님의 참사람(眞人) 정신을 강조했다.

 

스님은 ‘임제록 연의 ’‘선과 현대문명’‘참사람결사문’, 법어집으로는 ‘절대현재의 참사람’‘사람’등의 저서를 남겼다.

 

자료출처: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