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18일 거론한 ‘서울에 중대 위협이 없는 군사옵션’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정부 소식통은 26일 “그간 미국은 파괴적 후폭풍을 우려해 군사옵션을 쓸 생각을 못 했는데 막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보니 쓸 만한 군사 옵션이 많았다는 얘기가 미 정부 측에서 나왔다”며 “화력을 동원한 직접 타격 없이도 군사적 압박 효과를 내는 군사 옵션이 수두룩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군사 공격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력시위의 수위를 높여 김정은 정권의 긴장도와 피로감을 극대화하는 심리전 전술을 필두로 한 모종의 군사 옵션이 서막을 연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서울에 위협 없는 군사옵션으로 참수작전·사이버전·전자전·네트워크 파괴전 등이 거론됐으나 북한의 반격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가능성 높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로 매티스 장관의 발언 이후 미국이 동원한 심리전 카드는 기존의 한·미 연합훈련 차원의 무력시위와 수준이 달랐다. 강도와 규모·내용에서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미국의 초음속 전략폭격기 B-1B '랜서'가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 상공을 비행하고 있다. 랜서 폭격기는 마하 1.2로 비행할 수 있으며 기체 내부에는 34t, 날개를 포함한 외부는 27t 까지 적재할 수 있다. [연합뉴스]
대표적인 것이 이 발언 닷새 후 나온 미국 장거리 전략폭격기 B-1B ‘랜서’ 편대의 야간 기습 기동이다. 당시 초음속 전략폭격기인 B-1B 편대는 동해 북방 한계선(NLL)을 넘어 공해상을 비행하고 돌아왔다. 이어 지난 10일에는 동해에서 군사 분계선 (MDL) 이남의 내륙을 관통하며 서해상으로 빠져나갔다. B-1B는 지하벙커를 파괴할 수 있는 GBU-31 유도 폭탄 등을 탑재한 김정은 정권 수뇌부를 노리는 핵심 전력이다.
저공 비행하는 '죽음의 백조' B-1B 랜서 전략폭격기
B-1B 편대가 대북 무력시위를 하고 있던 그 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국가안보회의(NSC)에 참석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에게서 북핵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회의 장소는 워룸(war room)으로 알려진 존 F 케네디 컨퍼런스룸이었다. 2011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지휘했던 곳이다.
정부 관계자는 “지난 4월 시리아 폭격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작전 상황을 지켜봤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워룸에서 회의를 주재하는 그 순간 B-1B가 한반도 상공을 날고 있었다는 점에서 북한 수뇌부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백악관은 대시리아 공습 작전이 진행된 지난 4월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진이 플로리다 마라라고 리조트에 마련된 상황실에서 작전 상황을 보고 받는 장면을 공개했다. [중앙포토]
이후에도 미군은 강도 높은 심리전 차원의 무력시위를 이어갔다. 서울 상공서 병기창을 열고 F-22 랩터가 저공비행을 하는 장면이 일반에 공개됐고 B-1B도 지상 150m 높이까지 낮게 날면서 굉음을 내뿜었다.
지난 16일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 프레스데이 행사에서 스텔스 전투기 F-22A가 병기창을 개방한 채 기동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또 핵무장한 B-52폭격기는 미 본토에서 24시간 출격 태세에 들어갔다는 전언이 돌았다.
바다에선 배수량 1만9000t의 핵추진 잠수함 미시간함과 최신 공격형 핵추진 잠수함 투산함이 각각 부산과 진해에 정박했다가 사라졌다. 특히 미시간함은 토마호크 미사일 수직발사대 22개를 보유한 오하이오급 잠수함으로 최대 154발의 토마호크 미사일 발사가 주 임무다. 토마호크 미사일은 개전 초기 적의 지휘부와 통신·방공망 파괴에 집중 투입되는 핵심 무기체계다.
지난 2011년 8월12일 홍콩에 정박한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 사진=정용환 기자
로널드 레이건호의 갑판 아래 전투기 격납고. 사진=정용환 기자
'압권'은 대규모 항모강습단의 동시 전개다.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 레이건함이 부산에 정박하고 있는 가운데 또 다른 핵항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함과 니미츠함이 잇따라 7함대 작전구역에 진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CNN에 따르면 니미츠함은 제5함대 작전구역인 페르시아만에서 7함대 작전구역으로 이동했다. 또 루스벨트함은 지난 6일 모항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기지를 떠나 서태평양으로 이동했다. 두 항모전단의 임무교대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급변 사태 발생 시 한반도로 이동할 수 있는 포석인 것이다.
이 같은 심리전은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북한에 가하라는 의미에서 중국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혼란을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여기는 중국의 약점을 노린 전술이라는 것이다. 군사 소식통은 “군사옵션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모호하게 관리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무력시위로 상대(북한·중국)의 불안감을 극대화시키는 한편 상대의 행동을 제약하는 고도의 심리전이 전개되고 있다”고 말했다. 협상 국면에 대비해 유리한 입지를 선점하려는 노림수가 깔렸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