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이휘소 박사

얼 골 2017. 10. 30. 13:09

이휘소 박사NYT는 28일(현지시간) 우리나라가 1970년대와 1980년대 두 차례 비밀리에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으나 미국의 압력 때문에 좌절됐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천재물리학자 이휘소 박사의 핵무기 개발 참여설이다. 소설 등으로 확산된 이 얘기는 사실일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유학을 간 이휘소 박사는 25살의 나이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부터는 세계 최고의 물리학연구기관인 페르미 국립가속기 연구소에서 입자물리학 연구팀을 이끌었다. 신의 입자라고 불리는 '힉스' 입자와도 인연이 깊다. 그는 1972년 '힉스 입자에 미치는 강력(강한 핵력)의 영향'이라는 논문을 국제학회에서 발표하면서 피터 힉스 박사의 이름을 따 처음으로 가상의 이 입자를 '힉스'라고 불렀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에 가장 근접한 한국인이었다.

하지만 핵무기 개발과 관련해 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수차례 유가족과 지인들의 반박에도 불구하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 개발을 돕다 미국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음모론이 퍼지기도 했다. 그는 1977년 6월16일 미국 일리노이주의 80번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