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모니
석가모니는 자신을 중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지금 불교 수행자들이 스스로를 중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석가모니에 대한 크나큰 망발(妄發)이다. 불교 수행자들이 스스로를 중이라고 부르는 것은 석가모니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중이라는 말은 석가모니와 동기동창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은 본디 선지자(先知者)라는 뜻이다. 중이라는 말은 지금까지 아무도 가서 보지 못한 곳을 일찍 가서 본 사람이라는 뜻이다. 중은 지금까지 세상의 어떤 사람도 가서 보지 못한 곳을 혼자서 제일 먼저 가 본 사람이다. 곧 독보자득(獨步自得)한 사람이 중이다
중은 다른 사람이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을 혼자서 가 본 사람이다. 정신세계의 전인미답지(前人未踏地)를 혼자서 개척한 사람이 중이다. 근도(近道)에 이른 사람 곧 득도(得道)한 사람이 중이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 근사(近似)하다는 말이다. 요즘 사람들은 근사하다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득도했다는 말은 완전한 도를 얻었다는 뜻이므로 매우 교만한 말이다. 사람이 완전한 도를 얻는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근도(近道)라고 하는 것이 하늘과 땅에 대해 겸손한 것이다.
한자로 중 승(僧) 자는 사람 인(亻)에 일찍 증(曾)을 붙여서 만든 글자다. 일찍 증(曾)에 사람 인(人)을 붙인 것이 중 승(僧)이다. 일찍 다른 사람이 가지 못한 곳을 가 본 사람이 중이다.
곧 다른 사람이 가지 않은 곳을 가 보았고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이 중이다. 중은 선지자(先知者), 선견자(先見者), 예언자(豫言者)라는 뜻이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입고 다녔던 옷을 가사(袈裟)라고 부른다. 한자로 똥 걸레 가(袈)에 똥 걸레 사(裟)로 쓴다. 지금도 승려들이 입는 법복(法服)을 가사라고 부른다. 본래 가사는 승려들의 법복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여기 저기 버려진 똥 걸레를 주워 모아서 덕지덕지 기워서 만든 누더기 옷이다.
사람이 고운 천으로 새 옷을 지어 입고 다니다가 헐어서 못 입게 되면 이불 속에 넣는 창으로 쓰고 그것이 더 삭으면 행주로 쓰거나 밥보자기로 쓴다. 삭아서 못 쓰게 된 부분은 잘라내고 성한 부분만 이어 붙여서 쓰는 것이다. 이것이 더 낡으면 행주로 쓴다. 행주가 낡아서 쓸 수 없으면 걸레로 쓴다. 걸레가 더 낡으면 더러운 것을 닦아 낼 수도 없으므로 걸레로도 쓸 수도 없다.
걸레로도 쓸 수 없는 걸레는 마지막으로 개나 돼지, 아이들이 똥을 싸면 그것으로 똥을 싸서 버린다. 이렇게 버린 똥 걸레들을 여러 개 주워 모아서 똥을 털어내고 누덕누덕 기워서 이어 붙여 만든 옷을 가사라고 하는 것이다. 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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