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구대성

얼 골 2018. 9. 20. 15:18


- 질롱코리아 감독을 맡아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 기분이 어떤가. "시구(2016시즌 4월 5일 한화 홈 개막전) 이후 처음 (한국에) 온 것 같다. 새로운 일을 맡게 돼 부담감도 느끼고, 반대로 설레기도 하고 그렇다. 박충식 질롱코리아 단장님께서 '재능 있는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어서 좋은 팀을 한 번 만들어 보자'라는 이야기를 하셔서 감독직을 수락하게 됐다."

- 구 감독으로 인해 한국에 호주리그의 존재가 알려졌다. "2010년 한국에서 은퇴할 때쯤 '호주에 야구 리그가 생긴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처제가 마침 호주에 살고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알려 줬다. 그쪽에 '내가 직접 뛰고 싶다'고 얘기했고, 협의 끝에 시드니 블루삭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 시드니 팀에서 활약이 대단했다. "팀에 가 보니 (LG와 롯데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크리스 옥스프링이 투수코치를 맡고 있었다. 나는 사실 선발로 뛰고 싶었는데, 옥스프링 코치가 한국 시절을 생각해서 마무리 투수를 맡기더라.(웃음) 그래서 소방수로 뛰게 됐다."


- 호주리그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몸담았다. 지금 어느 정도 수준으로 올라왔나. "처음 시작할 때는 한국 고등학교, 대학교 야구 수준이었다. 그 이후 7~8년 정도 지나면서 많이 성장해 이제는 한국 2군보다 조금 낫다고 봐도 될 것 같다.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선수들이 많이 온다. 타자들은 예전에도 힘은 좋은 선수가 많았는데, 지금은 정확성도 많이 좋아졌다. 투수는 예나 지금이나 괜찮다. 오히려 한국 1군에서 뛰는 일부 선수들보다 좋은 투수들이 많다."

- KBO 리그 출신 선수들도 일부 호주를 거쳐 갔다. "임경완(롯데 코치)이나 고창성(kt)이 수준급으로 활약했다. 고창성은 호주에서 뛰면서 오히려 공이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서 좋은 기회를 잡은 것 같다."

- 호주리그 선수들은 대부분 세미프로로 알려져 있는데. "그건 맞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유망주들이나 마이너리그 경험을 쌓은 선수들을 많이 보내 준다. 호주리그에 가면 그 선수들과 함께 경기할 수 있기 때문에 아마 한국에서 호주로 선발돼 가는 질롱코리아 선수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 이틀간 트라이아웃을 지켜본 소감은? "첫날 봤을 때는 솔직히 눈앞이 캄캄했다.(웃음) 둘째 날 게임하는 것을 보니 그래도 첫날보다 훨씬 낫다는 느낌을 받았다. 희망을 봤다." - 한국 선수들이 호주에서 뛰려면 어려운 점도 있을 텐데. "아무래도 언어 문제가 가장 어려울 것이다. 환경도 한국과 많이 다를 수밖에 없다. 본인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생활하냐에 달린 것 같다. 홈인 질롱이 큰 도시가 아니고, 선수들은 현지 대학교 기숙사에서 지내야 한다. 대신 기숙사도 한국과 달리 일반 가정과 똑같은 시설이라 불편한 부분은 덜할 것이다. 선수들이 최대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 프로에서 성공하지 못한 선수가 대부분이라 감독의 책임감이 더 클 듯하다. "단장님과 처음 얘기한 것도 바로 그런 부분이다. 선수들의 기량이나 게임 감각을 끌어올려서 한국에 보여 주고 싶다. 한국에 중계라도 되면 각 구단 관계자들도 이 선수들이 한국에서 뛸 때와 다르다는 걸 발견할 수 있지 않겠나. 한 명이라도 프로에서 더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게 우리의 목표다."

- 구대성 감독 개인은 어떤가.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은 없나. "내가 한국에 온다고 해서 당장 뭔가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일단 우리팀(질롱코리아) 일에 집중해야 할 것 같다."


- KBO 리그 경기를 많이 보고 있나. 어떤 점을 느꼈나. "전 구단 경기를 다 보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뛸 때보다 절실한 선수가 많지 않아 보인다. 전체적으로 너무 소극적으로 야구를 하는 것 같다. 여러 구단에 열심히 하는 선수가 더러 있지만, 정근우나 이용규(이상 한화)처럼 악착같이 뛰는 선수가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게 후배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팀 안에서뿐 아니라 야구 전체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선수 구대성'은 '자신감'의 상징이었다. 고교 시절 전국대회 결승에서 일부러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고 삼진 3개를 잡은 에피소드가 있을 정도다. "그땐 그냥 나 스스로를 테스트해 보고 싶었을 뿐이다.(웃음) 하지만 결국 우리 선수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그런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자신 있게 플레이하라'는 얘기다. 사실 트라이아웃에 온 선수들이 절실한 마음으로 '나를 뽑아 달라'고 왔다면, 100%가 아니라 120%를 보여 주겠다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소극적이다."

- 자신감을 갖는다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닐 텐데. "물론 그렇다. 다만 소극적으로 플레이하던 선수가 자신감을 갖게 되면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생긴다. 우리 선수들이 호주에 큰 보상을 받고 가는 게 아니지 않나. 하지만 분명 호주에서 잘하다 보면 한국의 10개 구단 눈에 들거나 미국이나 일본에 갈 수 있는 길도 열릴 수 있다. 미국과 일본에선 호주리그에 종종 스카우트를 보낸다. 유심히 보다가 '키울 만하네' 하면 데리고 가기도 한다. 한국 스카우트들만 보이지 않는 게 아쉬웠다. 이제 호주에도 와 줬으면 좋겠다."


- 선수 생활의 가장 큰 자부심은 뭔가. "전체적으로는 1999년 한화 우승이 있고, 2000 시드니올림픽에서 153개를 던진 것도 기억할 만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나 스스로 못 견딜 만큼 아프지 않으면 절대 '못 던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야구를 하면서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했고,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부분이다."

- 구대성 감독이 한국 선수들을 이끌고 가면 호주에서 화제가 많이 될 텐데. "(친정팀인) 시드니는 벌써 질롱코리아와 개막전을 할 때 입기 위해 태극기를 붙인 유니폼을 따로 준비했다고 하더라. 한국 팀이 리그에 들어온 기념으로 가슴 아래에 태극기를 달고 뛰겠다고 한다.(웃음) 이제 한국과 뉴질랜드 팀이 들어오면서 8개 구단이 됐고, 2~3년 안에 일본과 대만 팀도 합류할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한국 팀이 자리를 잘 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다."

-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나. "트라이아웃에서 30명 정도 추려서 10월 15일부터 합숙 훈련을 시작한다. 호주에 최종적으로 25명 정도 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떨어지는 5명은 오히려 지금 낙오할 때보다 더 마음이 아플 수도 있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어느 스포츠든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호주리그는 11월 15일부터 시작된다.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전까지 바짝 훈련해야 할 것 같다.(웃음) 시즌이 시작되면 나도 시드니 집을 떠나 선수들과 질롱에서 함께 합숙 훈련을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