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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유도 정보경

얼 골 2018. 12. 25. 12:55

한국 여자 유도 48㎏급 간판 정보경이 지난 12일 충북 진천선수촌 유도훈련장에서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웃고 있다. 정보경은 키(153㎝)가 작지만 두 손으로 자기 몸무게의 약 3배에 달하는 130㎏짜리 역기를 허벅지까지 들어 올릴 정도로 힘이 세다. /고운호 기자[2018 이 순간] [10] 아시안게임 유도 金 정보경
"日선수에게 잡혔다가 겨우 탈출.. 팔을 들 수 없을만큼 아팠지만 수만번 익힌 업어치기 저절로 나와
똑같은 상황 오면? 또 버텨야죠.. 리우 銀 아쉬움, 도쿄서 날릴 것"

"엄청 아팠죠. 하지만 고통을 참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심판을 보고 있었죠. 그 15초가 마치 한 시간처럼 길었던 것 같아요."

정보경(27)은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유도 48㎏급 결승에서 곤도 아미(23·일본)와 연장 접전을 펼치던 중 상대 기술에 걸려 왼팔이 크게 꺾였다. 유도에서 꺾기를 당했을 때 못 버티겠다며 손으로 매트를 두드리면 한판패를 당한다. 하지만 꺾인 선수가 계속 버티고 있으면 심판은 경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두 선수를 떼어 놓는다. 정보경이 심판을 보며 표정 관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대 기술이 완벽하게 구사되지 않아 계속 버틸 수 있으니 얼른 '그쳐'를 선언하라고 눈으로 메시지를 보낸 거죠." 같은 상황에서 심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선수도 있다. 정보경은 "당시 상황이 그 정도로 여유가 있진 않았다"며 웃었다. 결국 위기에서 벗어난 정보경은 꺾였던 그 왼팔로 업어치기에 성공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어려운 경기를 이겼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꺾인 왼팔로 업어쳐 금메달

최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정보경은 '그 순간'을 또렷하게 머릿속에 떠올렸다. 일본의 곤도는 정보경의 왼팔을 두 다리 사이에 끼운 채 누워 꺾었다. 정보경은 "처음 꺾였을 땐 '팔이 부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복 선언'을 하려고 오른손을 매트 바닥 쪽으로 가져갔다"고 했다. 억지로 버티다 다쳐 운동을 쉬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도 다급했던지 기술이 완벽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일본 선수 다리를 밀었더니 조금 더 여유가 생겼어요. 팔 부러지는 고통이 10이라면 7~8 정도라서 견딜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정보경(왼쪽)이 지난 8월 29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 유도 48㎏급 결승전에서 일본 선수에게 꺾기 기술을 당하는 모습. /국제유도연맹

정작 위기는 '그쳐'와 함께 찾아왔다. 정보경이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찰나 일본 선수가 제대로 못 들었는지 방향을 바꾸며 한 번을 더 꺾었다. 팔이 부러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잠시 후 경기가 재개됐지만 왼팔을 들 수 없었다. 왼손을 쓰는 그에겐 낭패였다. 하지만 상대 공격을 막는 과정에서 왼손이 본능적으로 올라오더니 어느새 상대 도복을 잡았다. 기회를 보던 정보경은 빠른 속도로 업어치기를 시도했고, 심판이 절반을 선언하면서 우승했다.

"왼팔에 힘이 많이 들어가진 않았지만 타이밍이 좋았어요. 수만 번 연습하면서 몸에 익힌 것이 자연스럽게 나온 거죠."

◇2020 도쿄올림픽 金 재도전

정보경은 "그때 견디지 못했다면 '꼭 금메달을 따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해 지금도 후회하고 있을 것 같다"며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버틸 것"이라고 했다.

2016 리우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정보경은 메이저대회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2015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에 그쳤다. 그래서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갖는 의미가 크다.

"올림픽 은메달이 아시안게임 금메달보다 가치가 클 수 있겠지만, 그래도 2등보단 1등 하는 게 기분이 더 좋네요."

정보경은 아시안게임 이후 국제대회에 한 차례도 나가지 않았다. 대신 당분간 체력 훈련에 중점을 두면서 기초 체력부터 다시 끌어올릴 예정이다. 많은 대회를 치르면서 노출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자신의 유도 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있다. 그는 "큰 대회에서 모든 걸 쏟고 나면 몸과 마음이 지치기 때문에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은 목표는 2020년 도쿄올림픽 금메달이다. 한국 여자 유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 조민선이 마지막이다.

"우리와 가까운 일본에서 열리는 대회라 준비만 잘하면 좋은 성적을 낼 자신이 있어요. 2년 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아깝게 놓쳤기 때문에 이번엔 꼭 따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