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스님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월성스님
전북 장수군 장계면 금덕리 산 32-2번지, 장계면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산자락에
월성스님은 석가모니 정근을 할 때면 목이 갈라질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도하기 위해서는 천수경 등은 크게 소리 내기 보다는 자신이 알아들을 정도면 된다고 한다.
월성스님은 절 하기와 염불을 통해 스스로 망상을 정리한 후 화두를 잡으면 7일이면 화두가 타파된다고 한다.
만약 스스로 준비 되어 있지 않다면 세월만 낭비할 뿐 화두 타파는 쉽지 않다.
배추 씨앗을 밭에 뿌려 놓되 김을 매주지 않으면 잡초만이 무성하고 배추가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절 하기와 염불정진을 잡초 즉, 번뇌와 업장을 녹이는 김 매기에 비유한 것이다.
배추 밭에 잡초가 없다면 배추는 잘 자라게 된다.
이 때 배추 씨앗은 자성불(自性佛)이다.
다겁의 윤회를 통해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힘든 고행도 소용이 없다.
수많은 전생의 수행을 통해 득력(得力)한 상태가 아니라면, 몸과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득력해야 한다.
득력이 되면 자성불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때 화두는 타파된다.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지치고, 가르침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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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 월성스님
전북 장수군 장계면 금덕리 산 32-2번지, 장계면의 넓은 평야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아늑한 산자락에 성관사는 서 있었다.
원래 성관사 주변에는 금덕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주지가 여러차례 바뀌면서 관리 부실로 8•15 해방을 전후해 폐사가 되었는데, 1993년 월성 스님과 제자 삼진스님이 현 사찰 건물을 새로 짓고 이름을 성관사라 한 것이다.
성관사의 주변 지형은 백학이 나는 형국으로, 남덕유산 지맥인 깃대봉에서 수많은 학 떼가 날아와 모이를 쪼아먹는 곳에 성관사가 들어서 있다.
월성스님은 석가모니 정근을 할 때면 목이 갈라질 정도로 열심히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 기도하기 위해서는 천수경 등은 크게 소리 내기 보다는 자신이 알아들을 정도면 된다고 한다.
월성스님은 절 하기와 염불을 통해 스스로 망상을 정리한 후 화두를 잡으면 7일이면 화두가 타파된다고 한다.
만약 스스로 준비 되어 있지 않다면 세월만 낭비할 뿐 화두 타파는 쉽지 않다.
배추 씨앗을 밭에 뿌려 놓되 김을 매주지 않으면 잡초만이 무성하고 배추가 자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절 하기와 염불정진을 잡초 즉, 번뇌와 업장을 녹이는 김 매기에 비유한 것이다.
배추 밭에 잡초가 없다면 배추는 잘 자라게 된다.
이 때 배추 씨앗은 자성불(自性佛)이다.
다겁의 윤회를 통해 자란 잡초들을 정리하지 못한다면 힘든 고행도 소용이 없다.
수많은 전생의 수행을 통해 득력(得力)한 상태가 아니라면, 몸과 마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도록 득력해야 한다.
득력이 되면 자성불은 저절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그 때 화두는 타파된다.
참선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지치고, 가르침도 받을 수 없다.
물론 염불정진으로 나타나는 경지인 염불삼매는 참선정진으로 드러나는 화두삼매와는 비교가 안된다는 것이 월성 스님의 설명이다.
3천대천 세계를 체험하고 화신불 응신불 법신불을 친견할 수 있는 염불삼매는 탐진치가 멸한 선정삼매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염불삼매는 이른바 팔지보살의 세계이다.
이와 같은 선정삼매의 경지는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세계이니, 말로써 설명할 수 있다면 어찌 대도의 경지이겠는가.
대각선원에서는 결제에 들어가면 수좌들은 산문 밖을 나가지 못하며, 가까운 산으로의 등산조차 금지될 정도로 계율이 엄격하다.
초코렛, 우유, 빵도 함부로 먹을 수 없다.
불살생계를 지키기 위해 채식을 함은 물론 정진에 필요한, 칼로리가 적은 음식으로만 공양을 한다.
지나친 음식은 음욕을 생기게 하고, 이것이 폭력의 형태로 발산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사사로운 음식에서 나오는 인연법도 수행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되다며 규제할 정도로 대각선원의 청규는 서릿발 같다.
그래서 대각선원에서 3년만 공부하면 많은 악습이 떨어지고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된다.
"스님네들이 한평생 공부하고서 얻은 바가 없다면 도둑놈이나 진배가 없다.
수행하면서 남의 살 먹고(육식하고) 욕망을 짊어지고 몸뚱이 위주로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을 불태우면서도 타는 줄 모르고 산다.
인욕하고 화합하면서 한 점 부끄럼 없는 수행자가 돼야 한다"는 평소 월성 스님의 가르침이다.
"옛날에는 조계 가풍에서도 염불은 기초수행에 들어갔습니다. 업연(業緣) 많은 중생은 머리를 깎아도 망상이 많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죠.
스스로의 아만심이 수행을 방해하기에, 잠 줄이며, 절하고 참회하면서 계행을 철저히 닦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근기를 갖추어 나가야 합니다."
절은 망상을 제어하기에 좋다.
수천배를 하다보면 힘이 들어 망상이 들어올 여지가 없고, 저절로 하심(下心)이 된다.
월성스님은 잠 안자기 위해 절을 했다고 할 정도로 수면욕을 굴복시키는데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잠만 들면 음욕이 발동하기 때문에 늘 깨어있으려는 마음에서 수마를 극복하고자 했다.
월성스님이 19세 때에 수마(睡魔)를 조복시킨 인연담은 이러했다.
6•25 한국전쟁이 끝난 얼마 뒤, 18세의 나이에 군에 입대한 월성스님은 당시 훈련소에서 야간 근무때 잠을 안 재우던 것이 습이 돼 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
잠을 자면 북한군이 몰래 쳐들어와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긴박한 상황이었다.
참을 수 없이 졸음이 와 눈을 감을라치면 교관들이 입에 개구리를 물려 개구리가 오줌을 싸는 기압을 받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게 93일간 훈련을 받으니 잠이 저절로 사라졌다고 한다.
"내가 3천배를 처음 시작할 때는 그래도 상(相)이 남아 못된 스님의 도포자락만 보아도 싫을 때가 있었지만, 1만2,000배 정진에 들어갔을 때는 무아지경에서 업장이 녹아내리는 걸 느꼈습니다.
눈은 아래를 보고 있어도, 등 뒤에서 엄청난 용광로와도 같은 불덩어리가 내 몸을 관통하더군요.
이 불구덩이가 지나갈 때 탐•진•치 삼독과 일체의 번뇌가 사라지고 평온한 마음이 찾아드는 걸 체험합니다.
여기서 혜안(慧眼)과 식(識)이 열리는 것이지요."
1만 2000배 기도는 5∼6년씩 3번에 걸쳐 했다.
100일씩 나눠 300일씩 하는 1만 2000배 기도를 통해 망상을 제거하고 참회를 통해 업장을 소멸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1만 2,000배 기도는 반야심경 221편, 천수경 121편 독송, 참회의 절 3천배, 신도를 위한 절 3천배로 진행되었다.
이 때 죽을 것처럼 수행하던 모습을 지켜본 신도들도 따라 열심히 수행했다 한다.
지금은 노인이 다 된 성관사의 신심 깊은 우바새, 우바이들이다.
진리의 말씀을 믿고 행하며 깨닫는 참된 '기도'는 그대로 스스로를 정화시키고, 주변환경을 진리공덕으로 장엄하게 한다.
즉 제불보살에게 구하여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원만구족한 불·보살님의 마음으로 회복시키는 수행방편이다.
스님들이 용맹정진에 들기 전에 기한을 정해 기도에 드는 것도 이런 간절한 서원을 담고 있다.
재가자들도 매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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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세에 월성스님은 통도사 극락선원에서 화두정진에 들었다.
이때 선방에 든지 1주일만에 첫 소식을, 한 달 하루만에 화두가 완전 타파된 것이다.
21세부터 해인사로부터 통도사 봉암사 백양사 등 제방의 선원에서 정진한 후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지 30년만에 얻은 감격적인 소식이었다.
월성스님은 오랫동안 용맹정진을 한 이유를 땅에 말뚝을 박는 데 비유했다.
"말뚝을 땅에 박을 때 계속해서 크게 해머질을 할 수는 없습니다. 몇 번은 살살 두드리고 다시 힘을 모아서 크게 내려칠 때 말뚝은 땅 속으로 깊이 박히게 됩니다.
화두참구도 이와 같아서 평소의 정진에 의해서 얻어진 힘의 바탕 위에 용맹정진을 통하여 선정의 힘이 크게 증장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말뚝 박듯이 온 정성과 힘을 기울인다면 안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후 월성스님은 제방의 선지식들을 찾아가 깨달음의 경지를 나누었다.
후학들을 위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이렇게 당부하셨다.
"세상은 같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남을 위한 미덕을 쌓고 각계각층이 화합하며 살아가되, 양심을 지키며 살면 됩니다.
부귀영화가 무슨 소용있습니까. 어떤 때 법문을 할 때 보면 지옥으로 끌려가는 중생들이 눈에 보여 눈시울이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죄 짓지 말고, 자성을 밝히는 공부하며 사는것이 인생을 가장 값지게 사는 일입니다."
목숨을 건 스님의 용맹정진을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스님은 28세에 삼각산 법화사 옆, 호랑이 굴에서 31세까지 토굴 정진을 했다. 당시 이 곳에는 호랑이 들이 많아 사람들이 얼씬도 못하는 곳이었지만, 스님은 호랑이와 몇 번이나 마주치면서도 '도를 닦는다는 사람이면 자기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어야 한다'는 각오로 위험을 무릎쓰고 동굴에서 정진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한 겨울 호랑이 두 마리와 맞닥뜨려 죽을 지경에 처했다. 호랑이가 혀로 스님의 얼굴을 거칠게 핥는 위기일발의 순간에 스님은 "내가 전생에 업을 많이 지어서 너희들에게 내가 잔인하게 굴었다면 내 목숨을 줄 것이며, 내가 너희를 도와줬다면 너희들도 나를 돕고 갈 것"이라며 태연하게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삼매에 들자 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월성 스님은 요즘도 깊은 잠에 들지 않는다. 20여분씩 잠깐 귀잠을 잘 뿐이다. 좌선할 때나 포행할 때는 물론 잠을 자면서도 숨소리를 들으며, 화두를 놓지 않는다. 이른바 보림의 과정이다. 옛 스님네들은 견성 이후의 수행 즉 '불행(佛行)'을 늦추지 않았다. 오랫동안 중생으로 살아온 습이 한 순간에 떨어져 나가긴 힘들기 때문이리라.
스님은 불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어릴 때부터 이웃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평소 '중은 공인(公人)이다'고 강조해 온 스님은 요즘도 제자들에게 기도후 세계평화와 인류평화, 조국평화통일, 국가재난 소멸, 국가 안녕과 태평, 육도중생의 성불을 발원할 것을 꼭 당부한다. 남을 위한 기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기도요 수행이며, 이런 발원이 쌓여야만 보다 큰 그릇이 될 뿐만 아니라 성취도 빠르기 때문이다.
"얼마나 큰 공부를 하고 큰 성과를 얻느냐는 얼마나 큰 발원을 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세계평화와 조국통일, 온 국민이 삼세업장을 소멸하고 왕생극락하길 발원하는 것은 큰 공부를 짓기 위한 것입니다. 진정 확철대오를 원한다면 남을 위해 살고 아상을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님은 불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던 어릴 때부터 이웃을 위한 기도를 시작했다. 요즘도 제자들에게 기도후에 세계평화와 인류평화, 조국평화통일, 국가재난 소멸, 국가 안녕과 태평, 육도중생의 성불을 발원할 것을 꼭 당부하고 있다. 평소 ‘중은 공인(公人)이다’고 강조해 온, 그 이유 때문이다.
남을 위한 기도는 결국 자신을 위한 기도요 수행이다. 이런 발원이 쌓여야만 보다 큰 그릇이 될 뿐만 아니라, 성취도 빠르다. 생전에 조국의 평화통일을 보는 것이 월성 스님의 서원이다.
“큰 공부 하느냐, 못하느냐 그건 자기자신에게 달려있습니다. 한 생을 던져서 해도 될까말까 한데 말입니다. 명예욕이 가장 큰 장애입니다. 자신 위해 살면 인간 마음 못 벗어납니다. 세계평화와 조국통일, 7,500만명이 삼세업장을 소멸하고 왕생극락하길 발원하는 것은 큰 공부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 하나를 위해 산다면 나라는 누가 건집니까. 나를 위해 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불자들만이라도 남을 위해 살고 아상을 극복하도록 노력해 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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