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붕당정치를 이끈 서인의 지도자 송시열의 초상
조선중기 대표적인 학자이자 정치가인 송시열의 초상화이다
. 송시열은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를 공격하자는
북벌론을 주장하였다. 그는 서인의 지도자로서
효종이 죽은 뒤에 일어난 예송논쟁에서
남인과 대립하였고 천하에 적용되는 에가
동일하다는 예론을 옹호하였다. <출처:중앙박물관>
"임금이 바로 서야" 호통친 기개가 얼굴 위에(송시열)
입력 : 2012.03.25 22:34
- '송시열 초상' - 김창업 그림, 비단에 채색, 91×62㎝, 1680년, 충북 제천 황강영당 소장.
우암의 나이, 이때가 74세다. 올 굵은 눈썹이 튀어나오고 수염은 물결치는데, 대춧빛 강건한 입술은 꾹 다물었다. '송자(宋子)'라는 존칭으로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르고도 강고한 성격 때문에 비난을 받은 그는 불화(不和)를 구태여 조정하려 들지 않았다. 납덩이 같은 외고집이었다. 우암은 관복(官服)을 입은 초상화가 없다. 모두 유학자의 옷차림인 심의(深衣) 바람이다. 비단옷을 멀리한 그의 성품이 개결했다. 그림은 문인(門人)이자 후학(後學)인 김창업이 그렸다. 얼굴은 마음을 닮는다. 우암 얼굴에 생애의 풍상(風霜)이 완연하다.
출처 : 잠시 머무는 쉼터
글쓴이 : 초안약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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