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사람은 꼬라지대로 연기해야 한다’ 오달수

얼 골 2015. 9. 26. 13:41

배우에겐 의도가 있을 수 없다. 친일파에 대한 공분, 정의 실현에서 느끼는 통쾌함 그런 건 같이 느끼지만 배우의 입장에선 어떤 편견도 갖지 않는다. 편견이 없어야 연기가 자연스러워진다. 배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 개인적 정치 성향은 있을 수 있지만 배우로서는 아니다. 말 나온 김에 얘기하자면 내 정치 성향은 이런 거다. 황지우의 시에 그런 구절이 나온다. ‘버스 운전수의 급격한 우회전은 승객들을 좌편향시킨다’. 이게 내 생각이다.”

 

오달수는 박찬욱을 ‘인생의 은인’이라 부른다.

 

“배우들이 원래 훈련 겸 직업적으로 관찰을 많이 한다. 독특한 사람이 있으면 기억을 해두는 경우가 많다. 극단 백수광부의 연출가 이성렬이란 분이 있는데, 사람은 매우 좋은데 말투나 걸음걸이 이런 게 ‘가져다가 연기에 써먹으면 좋겠다’ 그런 캐릭터다. <올드보이>에선 그분을 의도했다. 그 이야기를 언젠가 술자리에서 당사자에게 했는데 자기가 아니라고, 자기를 무시한다고 그러시더라.(웃음)”

 

철웅도 그랬지만, 대체로 악한이면서도 불쌍하고 힘없는 역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난 부산의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하면서 처음 연극을 하게 됐는데, 연희단거리패의 연출가 이윤택 선생은 세계적인 연출가다. 그분이 그런 말을 하셨다. ‘악할수록 연민이 가야 한다’고. 악한의 전형성이란 건데…. <나홀로 집에>에서 조 페시가 연기한 도둑 같은 역이 대표적이다.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은 정말 나쁜 놈, 절대악이잖나. 한데 과연 그런 절대악이 현실에 존재하나. 연민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악한도 결국 죽는다는 거. 옛날에 연애할 때 <바보각시>란 작품을 했는데 이윤택 선생이 하루는 부르셔서 ‘달수야 사람은 꼬라지대로 연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연애를 하고 난 뒤부터 멋있어 보이려고 한 것 같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바보여야 하는데. 선생님 말로는 난 ‘소상’, 하회탈 같은 ‘웃는 얼굴’이다. 비극 하면 안 어울린다. 슬퍼도 페이소스(비애감)랄까.”

 

“꼬리뼈나 고관절 안 다치려고 노력한다. 드러누우면 욕창 걸려서 죽어버리니까.”

이상한 농담. 항상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고 코믹한 역할을 주로 맡는 영화 속 그의 이미지가 잠시 불거져 나왔다. 스스로 숫기 없고 낯을 가린다는 이 사람은 어쩌다 배우가 된 걸까.

-성격이 정말 의외다. 부모님이 엄하신 편인가?

“아버님한테 손바닥 한 번 맞아본 기억이 없다. 대신 아버지로서의 무게감이 있었다. 야단을 치시는 것도 아닌데 가만히 계셔도 무게가 느껴지시는 분이다. 성격은… 누나들 덕이 컸다. 누나들이 음악 하는 사람들이라 덩치도 좋고 어렸을 때 얻어터지고 그랬다. 기죽어 살다보니….”

-그동안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이나 가족들 이야기가 잘 안 나타나더라. 아버지가 교직에 오래 계셨다고 들었다.

“(현 경북대 사범대의 전신인) 대구 사범학교(일제 때 설립된 초등교원 양성 학교)를 나오셨다. 평생 교직에 계셨고 풍금을 잘 치셨는데, 6년쯤 전에 돌아가셨다. 어머님은 살아계신다. 형제는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큰형님이 계시고 내 위로 3살씩 터울인 누나 둘이 있다. 내가 막내다. 주로 누나들과 지내서 숫기가 없다. 작은누나를 따라 큰누나를 언니라 불렀다. 큰누나가 피아노, 작은누나가 성악을 전공했다. 형님은 큰 배의 배관을 설계하는 일을 하셨다.”

 

 

가훈이 독특하다. ‘말을 더듬어라’라던데?

“서른살 되던 해에 세배를 드리니까 아버님이 덕담으로 ‘넌 이제 어른이니 앞으로 말을 더듬어서 해라’라고 하셨다. 정치인들 보면 왜 ‘에… ’, ‘저… ’, ‘그…’로 말을 시작하지 않나. 생각을 하면서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내뱉지 마라, 그런 의미로 하신 말씀이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해주신 거다.”

-중고교 시절은 어땠나?

“너무너무 평범했다. 튀지도 않았고 고교 때 한번씩 친구들끼리 몰려다니며 막걸리 마신 것 정도다. 저녁에 술 취해 들어가니 어머니가 황당해하시며 ‘아버지 주무시니까 빨리 들어가서 자라’고 한 기억도 있다.”

-출생지는 대구인데, 학교를 다 부산에서 나왔다.

“부산으로 온 기억이 없을 정도로 어릴 때다. 사실상 부산에서 자랐다고 보면 된다.”

-그럼 명절엔 부산으로 가나?

“아버지의 고향은 대구 바로 옆 경북 청도인데 대구나 청도엔 먼 친척들만 계시고 부산 영도에 어머니가 계셔서 부산으로 간다. 명절엔 꼭 가려 한다. 좋은 날이니까. 이번에도 어렵게 어렵게 비행기표를 구했다.”

 

어느 날 이윤택 선생이 ‘배역 하나가 펑크 났다’며 날 불러 맡긴 게 연극 <오구>의 ‘문상객 1번’이었다. 공연 시작 5분 뒤 등장해서 끝날 때까지 2시간 동안 마당에 앉아 화투 치고 앉아 있는 역할이다. ‘쓰리고다’ 이런 대사 하면서.”

-직접 출연하니 어떻던가?

“관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없는 마당극이었다. 문상객으로 앉아 있는 내 바로 뒤에 관객이 있었다. 패닉이 되더라. 정말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근데 이게 세계적 연극이 되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연극이 됐다. 나중엔 독일, 일본으로 순회공연도 다녔다. 고생스러웠지만 계속하다 보니 인이 배고 그러다 연극에 젖어든 거다. 그 뒤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연극만 했다.”

 

 

 

애초 연극을 하겠다는 생각이 없지 않았나. 우연히 시작한 일인데 ‘계속해야 하나’ 그런 회의가 없었나?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연극하겠다고 찾아온 사람들도 보통 1년 버티면 많이 버틴다고 한다. 많이들 왔다 나간다. 너무 힘들어서 스님이 된 친구도 있었다.”

-뭐가 힘든가? 수입이 적은 것?

“다 힘들다. 쌀은 사야 하니 관객을 모으기 위해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게 첫 번째 부담이고, 다음이 돈이 안 된다는 거. 우리나라에 신극이 들어온 게 1920~30년대인데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신극이 들어온 이후로 올해가 가장 힘들다’는 얘기를 해마다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을 수 있나?

“극장 안에서 같이 굶고, 같이 고생하고, 같이 포스터 붙이고, 같이 밤새우고. 그래도 좋다고 날짜 지난 포스터 둘둘 말고 야구공 만들어서 극장 안에서 야구 하고. 재미있다. 정이랄까. 날 포함해 연극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인간이 그리워서, 외로워서, 그런 사람들 많을 거다. 얼마나 좋나? 앞에 수많은 관객들 앉아 있고, 옆엔 매일 부대끼는 식구들, 동료들 있고.”

-연극을 그만둔 적은 없었나?

“딱 한 번, 결혼을 해야 했을 때. 아내는 이윤택 선생에게 연기 배우겠다고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극단 동료였다. 3년 연애해서 결혼했는데, 처갓집에서 연극하는 사람한테는 딸 못 주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그만두고 1년 동안 주유소에서 일했다. 1년 뒤 처갓집에 ‘난 연극배우 아니다. 주유소 직원이다. 결혼시켜달라’고 했더니 시켜주시더라. 주유소는 그 뒤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스물아홉살 때였다. 그때 조광화라는 극작가 겸 연출가가 <남자충동>이란 연극을 하는데 같이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제의를 해왔다. 바로 짐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 생활은 어땠나?

“힘들었다. 결혼 생활도 얼마 못 갔다.(웃음) 6년 살다 이혼했다.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겠나. 아내는 연극 그만두고 나름 직장도 다니고 돈도 잘 벌었는데…. 지금은 아이 문제로 의논할 일 있으면 만나고 아이랑 여행 간다든지 하는 건 서로 간섭하지 않는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인 딸은 부산에서 할머니와 고모들이 돌봐주고 있다. 아무튼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골치가 아파졌다. 양육 문제도 신경이 쓰이고 또 정말 외로워지기도 했고. 서울에 그야말로 혼자 남겨졌으니.”

 

언제 주로 그런 문학작품들을 보셨나?

“아버님께서 많이 보셔서 집에 책이 많았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설국>을 쓴 일본의 소설가부터 시작해 쇼펜하우어니 헤르만 헤세니… 고교 때 뜻도 모르면서 읽었다. 쇼펜하우어 같은 염세주의자들은 죽겠다고 산속에 권총 한 자루 들고 들어가서 늙어 죽지 않나. 지나고 보면 그런 것들이 감성의 자양분이 된 거 같다.”

 

-본인이 맡은 배역은 아니지만 인상적이어서 외우고 있는 대사 같은 게 있을까?

“승룡이(류승룡)가 <7번방의 선물>에서 ‘내 딸로 태어나줘서 고맙다’ 하지 않나. 그러면 딸이 그런다. ‘내 아버지여서 고맙다’고. 시나리오에서 그 대사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나이 들면 점점 약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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