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TV 중계로 '쿵, 쿵' 거리는 소리가 안방으로 전해질 정도로 세게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바둑 전설' 조치훈(60) 9단이 자신의 실착을 자책하는 소리다. 조치훈 9단은 24일 서울 성동구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2016 전자랜드 프라이스킹배 한국바둑의 전설' 2국에서 서봉수(63) 9단과 대국하면서 스스로 납득할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흑돌을 쥐고 중종반까지 우세하던 조치훈 9단은 흑 139수로 좌상귀 흑 8점이 죽는 결정적인 실수를 해 스스로 무너졌다. 좌상귀 흑 대마는 중앙으로 연결이 어렵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초읽기에 몰린 조 9단이 착각했는지 허무하게 대마를 죽이고 말았다. 순간적인 착각으로 서봉수 9단에게 역전당한 조치훈 9단은 큰 신음소리는 내며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고 두들기며 심하게 자책했다. 소리가 날 정도로 주먹으로 머리를 쳤고, 의자 등받이 쪽으로 몸을 젖히면서 한국어와 일본어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끝내기로 들어가서도 연신 헛웃음을 지으며 씁쓸함을 곱씹었다. 지금도 일본 바둑계에서 현역으로 활동하고, 하루 종일 바둑을 공부하는 프로 기사의 승리욕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실수였다. 1956년 부산에서 출생한 조치훈 9단은 어린 나이에 일본 프로기사의 산실로 유명한 기타니 미노루 9단의 문하에서 수련했고, 1968년 일본기원 사상 최연소인 11세 9개월에 입단했다. 1980년에는 일본 최고 타이틀인 명인을 거머쥐면서 "명인을 따지 않고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바둑팬과의 약속을 지켰다. 1990년대 중후반에는 일본 1∼3위 기전인 기성(棋聖), 명인(名人), 본인방(本因坊)을 동시에 석권하는 대삼관(大三冠)을 4차례나 획득하는 대기록을 세우며 일본 바둑을 평정했다. 그가 차지한 타이틀은 총 74개로 일본 통산 1위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던 조치훈 9단이 '전설의 자존심 대결'에서 어이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한국바둑의 전설은 서봉수·조치훈·조훈현·유창혁·이창호 9단 등 한국 바둑의 거장 5인 가운데 승자를 가리는 대회다. 특히 이날의 맞수인 '토종 바둑 거장' 서봉수 9단은 유독 조치훈 9단에게 강한 상대였다. 조치훈 9단은 서봉수 9단과의 첫 대국인 1992년 11월 응씨배 준결승 1국에서 이긴 것을 마지막으로 서봉수 9단을 넘지 못하고 있다. 두 기사가 맞붙은 것은 1996년 9월 제1회 삼성화재배 본선 2회전 이후 약 20년만이다. 당시 대국은 서봉수 9단의 흑 불계승으로 끝났다. 이번 '전설대국'도 결국 서봉수 9단이 261수 만에 백 2집 반승을 거뒀다. 서봉수 9단은 요란하게 자책하는 조치훈 9단 앞에서도 바둑판만에만 집중하며 냉정한 표정을 유지했고 재역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서봉수 9단은 이날 대국도 승리하면서 조치훈 9단과의 상대전적을 4승 1패로 더욱 벌렸다. 그러나 조치훈 9단은 대국 후 웃는 얼굴로 방송 인터뷰에 임했다. 물론 "지금 너무 슬프다"고 말하며 지은 허탈한 웃음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고국 팬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픈 마음이 우러나왔다. 한국기원 관계자는 "보통 대국에서 진 기사들은 인터뷰를 사양한다. 그러나 조치훈 9단은 고국 팬들을 위해 분을 삼키시면서 인터뷰를 하신 게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