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두한
일제강점기 말 약관(18세)의 나이로 구마적과 신마적을 차례로 눕히고 종로 우미관의
보스로 군림했던 대한민국 협객의 대명사. 조선공산당의 산하인 조선청년전위대 대장으로 잠깐 있었으나
부친(김좌진)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된 후 탈퇴 및 전향하여 우익의 선봉장으로서 반탁운동 등 좌우대립에서
투쟁하였다. 3대 민의원과 6대 국회의원을 지냄.
180cm의 큰 키에 빠른 몸놀림과 발차기가 주특기였다고 함.
두발당상이라는 공중에서 두 발로 몸을 실어 차는 발차기에 모두가 나가떨어졌다고 함.
친구이자 같은 패밀리였던 김동회 씨에 따르면 그는 힘이 장사가 아니라 몸이 그렇게 빨랐다고 함.
2. 시라소니 (이성순)
동양 최고의 주먹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뿐 아니라 드넓은 만주땅에서까지도
적수가 없었다는 전설의 주먹.
175~177의 큰 키에 전광석화 같은 몸놀림과 박치기에 당할 사람이 없었다고 함.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서 그의 키가 작게 나오는 것은 거짓이라고 함)
유지광, 김홍빈 등의 건달도 자서전 등을 통해 한국 최고의 싸움꾼으로 그를 거론한 바 있음.
김두한과의 맞대결에서 김두한이 한 수 접었다는 일화가 있음.
이정재 부하들에게 집잔린치로 처참하게 쓰러짐. 후에 기독교에 귀의해서 집사가 됨.
주먹으로 흥한 자 주먹으로 망한다, 이기고 지는것은 덧없는 일, 하나님의 사랑만이 가치 있다는 말을 남김.
3. 이정재(동대문사단 두목)
전국씨름대회에서 5연패를 했을 정도로 엄청난 장사였다고 함.
동대문파라는 거대조직을 만들어 활동. 유지광이 심복.
'정치깡패'의 대표. 57년 5월의 장충단 야당집회 방해사건으로 '깡패'란 단어가 처음 등장.
군사정권의 깡패소탕령으로 말미암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4. 이화룡(명동파 두목)
신의주 출신으로 검은 양복의 사나이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이정재의 동대문파에 맞섰던 명동파의 두목이자 빨갱이가 싫어 남하한
이북 출신들의 모임인 '서북청년단' 대표.
맷집이 강하고 박치기와 공중걸이에 특히 능하다고 알려짐.
세력은 동대문파에 밀렸지만 건달세계의 대표자는 그였다고 함.
약자를 위할 줄 아는 건달이었다고 하고 김두한의 심복이던 김무옥과의 대결에서 이겼다고 함.
5. 신상현(신상사파 두목)
1952년 대구 헌병대 사령부에서 상사로 진급한 후 1953년 전역과 함께 일자리를 찾던 중 건달세계 입문.
평양출신 씨름꾼 최시현을 꺾은 후 정팔의 눈에 띄어 명동파 행동대장으로 5년간 맹활약.
'신상사파'는 이화룡이 이끌었던 '명동파' 행동대장 신상현이 결성했던 조직으로, '동대문사단' 유지광과
사투 끝에 명동 일대를 장악함. 70년대 명동을 장악하고 전국의 건달들을 좌지우지했던 전국구 주먹이었지만,
조양은의 사보이호텔 사건 이후 몰락함. '사보이호텔 습격사건'으로 '신상사파'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고
'범호남파'가 명동 진출의 쾌거를 올렸으나, 이 사건은 정통 '주먹 세계'의 종말을 예고하기도 했다.
호남세력의 장악으로 이때까지 주먹 세계의 불문율이었던 '주먹과 주먹의 대결구도'가 깨지고 칼과 방망이 등의
흉기가 등장하고 '주먹선배'까지 공격하면서 낭만파 주먹이 사라지고 소위 양아치 시대가 열렸다는 평가.
6. 조창조
시라소니 이후 맨손싸움 일인자라 불리는 대구가 배출한 전설의 주먹. 소설 큰형님의 실제 모델.
여러 가지 무술을 섭렵해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어 1:1 싸움에서 져본 적이 없다는 신화적인 인물.
고등학교 때부터 유도 등의 전국대회 우승자부터, 국가대표 레슬러까지 아무도 당할 자가 없었다고 함.
조직 없이 홀로 다녔지만 패밀리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싸움실력을 자랑했다 함.
김홍빈 씨(이화룡의 부하)도 한국 최고의 건달이라 언급한 바 있고 천안곰 조일환도 한 수 접는 실력자였다고 함.
실전에 가장 도움이 된 무술은 씨름이었다고 함.
오종철, 정학모, 이승완 등 호남 주먹의 대부들이 모두 큰형님으로 받들던 인물.
7. 이강환(칠성파 두목)
부산에서 40여 년 동안 최강의 주먹으로 군림했던 칠성파 두목.
조양은, 김태촌과 함께 전국구 중에서도 전국구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
부산 지역에서는 '밤의 대통령'이라 불릴 정도로 위세를 떨쳤던 인물이나
지역 건설사 상대로 수억을 강탈한 혐의로 적발되기도 함.
조창조가 인정한 이 시대 최고의 건달.
8. 조양은(양은이파 두목)
유명한 사보이호텔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그 사건으로 당시 패권세력이던 신상사파를 몰락시킴.
전성기 때 조직원 수가 1만 명 가까이 되었을 정도로 역대 최대 규모의 조직을 만듦.
대전의 김옥태(옥태파 두목)를 비롯해 전국구 오야붕(전국에서 이름이 통하는)만 43명까지 거느렸다 함.
174cm의 단신이지만 몸이 매우 빠르고 순간포착이 좋았다고 함.
고3 때 이미 광주에서 가장 큰 조직을 만들어 활동함.
호남선배들이 신상사파 식구에게 맞은 호남파 일원에 대한 복수를 망설이자 본인이 직접 나서서 복수했다고 함.
그 자리에서 신상사파는 물론이고 호남선배들까지 모조리 구타해 이후 모든 조직의 표적이 되어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름. 당시 3대 패밀리였던 서방파의 김태촌과 OB파의 이동재도 한 수 접는 세력을 형성.
(거의 서울의 절반을 장악했다고 함.)
1:1 맨손싸움의 낭만 시대를 끝내고 칼을 동원한 본격 사시미 시대를 연 양아치라는 평가가 많지만
조창조, 조일환, 김태촌, 안상민 등이 거론한 1000전의 맞짱에서 져본 적이 없다는
3세대 주먹의 대표주자로 불리고 있음.
9. 김태촌(서방파 두목)
조양은의 필생의 라이벌이 된 서방파의 두목.
당시 조양은에 맞설 유일한 인물이었다고 함.
서울에 조양은을 견제할 세력이 없자 호남선배들이 그를 광주에서 불러올림.
(당시 조양은은 사보이호텔사건으로 호남선배들의 표적이 돼 있던 상태)
세력 자체는 양은이파에 밀렸지만, 조직싸움에서는 용호상박이었다고 함.
조양은의 자서전에선 조양은을 형님으로 모셨다고 나오지만, 본인은 인정하지 않음.
10. 안상민
충남 서산 출신 전국구 주먹.
양은이파와 서방파 틈새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어 서울 전역을 장악했다 함.
비교적 작은 체격이지만 1:1 맞짱에서 져본 적이 없었다고 함.
"의리와 낭만이 사라지고 기습과 연장질이 난무하는 시대에 하지만, 서산에 안상민이 있었다."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타고난 싸움실력을 자랑했다고 함.
인간극장 출연으로 널리 알려진 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