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 중 '미군은 북한군의 6월 남침을 예견했다'는 내용이 등장한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부터 미 정부 내에서는 북한군의 남침 예견 실패를 놓고 책임 공방이 뜨거웠다. CIA, 극동군사령부를 비롯한 합동참모본부 등의 정보 부서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느라 바빴다. 그러던 차에 <워싱턴 뉴스>가 1950년 9월 1일과 10월 5일에 "극동군사령부의 정보참모부장인 윌러비(Charles A. Willoughby) 소장이 1950년 3월 10일에 북한군의 남침을 정확하게 예측했었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미 국무부 문서에 따르면 미 극동군사령부가 "1950년 3월 10일에 6월 경 북한군이 남침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상부에 보고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 국가기록원 소장 자료 중에는 '1951년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모스크바 회동'에서 합의한 내용이 소개된다.
1951년 2월 초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오쩌둥(毛澤東)과 스탈린(Joseph Stalin)의 회담에서 중국과 소련이 6‧25전쟁에서 협력을 합의한 사항이 기록된 CIA 정보 보고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포기하지 않으며, 전력을 다해 계속 싸운다. (2) 중국은 50만 명의 병력을 추가 파견한다. (3) 미국이 만주 폭격을 요청한 맥아더에 동의하는 경우 소련은 중소상호원조조약과 중소 동맹에 의거 일본의 미군 기지를 폭격한다. (4) 한국 파병으로 중국 내 병력이 부족한 요새를 강화하기 위해 중국은 소련군이 중국 내에 주둔하는 것을 환영한다. (5) 한국 전선을 강화하기 위해 소련은 국제 의용군을 조직해 한국에 파병한다. (6) 소련은 중국에 탱크와 트럭, 연료와 탄약 지원뿐 아니라 해공군 병력을 파견한다. (7) 중소 국경의 주요 지점에 대규모 군수품 기지를 세운다. 마오쩌둥의 모스크바 방문은 1951년 1월 말부터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으며, 마오쩌둥과 스탈린의 회동은 6‧25전쟁의 전개 양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마오쩌둥은 2월초 모스크바 방문으로 한반도에서의 미군 축출을 위한 기반 조성과 중국군에 대한 소련의 군사 지원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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