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고미 다카노리

얼 골 2016. 10. 26. 08:04

▲ 고미 다카노리의 인기는 급추락했다.그는 한때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 격투기 단체 프라이드의 73kg급 챔피언이었다. 베테랑 파이터로 여전히 UFC 라이트급에서 뛰고 있다.




2007년 프라이드가 문을 닫은 후 10년, 일본 격투기 업계는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다. 생각보다 길어진 장기 불황은 일본 종합격투기 버블 시대에 유행처럼 번졌던 체육관 사업 분야에 큰 타격을 입혔다. 확장성만이 돋보인 시장은 위험하다. 버블 시대 이후 폐관을 선언한 종합격투기 체육관만 수십 곳이다.

불황의 그늘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유명 선수들도 피해갈 수 없었다. 사쿠라바 가즈시의 래프터7, 추성훈(일본명 아키야마 요시히로)의 클라우드 아키야마 도장, 사카구치 세이지의 사카구치 도장 등이 폐관했다. 사쿠라바, 추성훈, 사카구치는 일본에서 이름값이 매우 높은 인물들이다.

한때 '체육관 사업의 본보기'라 불리던 요시다 도장, U-파일 캠프도 상황은 같다. 전국에 8개 지점을 가지고 있던 요시다 히데히코의 요시다 도장은 현재 도쿄 본점을 제외한 모든 지점을 폐관한 상태다. 다무라 기요시의 U-파일 캠프는 버블 시대에 5개의 지점과 1개의 소규모 격투기 공연장(니시초후 아레나)까지 열며 승승장구했다. 지금 U-파일 캠프는 단 하나의 지점만이 힘겹게 운영되고 있다.



일본은 전문적인 헤드 코치가 많지 않다. UFC에 맞는 전략을 지시하는 세컨드를 찾기 힘들다. UFC 플라이급 파이터 호리구치 교지는 '헤드 코치의 유무'를 미국과 일본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꼽았다.




K-1 맥스가 낳은 최고의 스타 마사토는 일본 격투기의 버블 시대를 가장 잘 체감한 파이터다. 2003년, 2008년 두 차례 K-1 맥스 챔피언에 올랐다. 그는 한 경기에 현금 5000만 엔(약 5억 5,000만 원)을 받은 것이 자신의 파이트머니 최고액이었다고 말한다. 토너먼트 우승 상금을 제외한 순수 파이트머니 얘기다.

"격투 버블이었으니까요. 섣달 그믐날(12월 31일) 지상파 방송사 3곳에서 격투기를 중계했으니까" 그는 덤덤하게 말한다. 마사토는 버블이 가장 최고조에 이를 때 활동했고, 버블이 급격히 사라지는 순간에 은퇴했다.

은퇴 후 마사토는 체육관 사업의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부터 다졌다.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는 곳, 사람들이 찾는 곳, 지금 실버 울프 체육관은 그런 곳으로 통한다. 은퇴 이후 방송 활동을 착실히 준비했다. 그는 이제 어엿한 예능인이자 배우다.



일본은 20년 전, 종합격투기, 입식타격기, 브라질리언 주짓수 광풍을 맞았다. 텔레비전을 틀면 격투기가 나오던 때다. 예능 프로그램이 격투기 선수를 섭외하려고 전쟁을 벌였다. 시청률이 나왔다. 상품이 팔렸다. 인기가 있었다. 당연히 돈이 됐다.

돈이 되니 단체가 난립했다. 이 사람, 저 사람이 격투기 단체를 만들었다. 무분별한 카드가 넘쳐났다. 대중은 자극이란 것에 금방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대회사는 몬스터 매치를 벌였다. 연예인을 동원했다. 시청률은 더욱 높아져갔다. 자연스레 체육관 사업이 흥했다. 나도 해볼까하는 심리로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각자의 체육관을 열었다. 이 흐름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한바탕 축제를 벌인 일본에 지금 남은 건 파산의 노년 뿐이다. 한때는 텔레비전 방송국이 앞다퉈 중계권을 따내고, 대회장을 만원 관객으로 채우던 그 화려한 '황금시대'. 동네마다 체육관이 있고, 인터넷에 격투기 얘기가 넘치던 그때는, 일본 격투기 업계가 눈치 채지 못하게 슬그머니 다가왔다가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사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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