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자비왕때 명신인 박문량은 제상의 아들로 천성이 청렴결백하여 항상 가난 속에서 청빈하게 살았으며 거문고를 즐겼고, 의복이 남루하여 백군데나 기운 누더기 옷을 입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백결선생이라 불렀다.
.478년 그가 65세때 이벌찬의 벼슬에 올라 아첨하는 무리들이 많음을 개탄하여 천재(天災),치폐(治弊),처경(處境),흥인(興人),지인(知人),화인(化人) 등 여섯장의 상소문을 올리니 이 상소문은 너무도 유명했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때 거문고로 회포를 푸니 이것을 낙천낙(樂天樂)이라 하였다.
.478년 그가 65세때 이벌찬의 벼슬에 올라 아첨하는 무리들이 많음을 개탄하여 천재(天災),치폐(治弊),처경(處境),흥인(興人),지인(知人),화인(化人) 등 여섯장의 상소문을 올리니 이 상소문은 너무도 유명했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갈때 거문고로 회포를 푸니 이것을 낙천낙(樂天樂)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