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전라도에서 동학 농민군이 봉기했다. 동학 농민군의 기세는 대단했다. 전주가 함락되자 조선 정부는 급히 청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청국이 2800여 명의 군인을 아산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은 조선 내 일본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8000여 명의 대규모 군인을 서울로 보냈다.
조선은 요청하지 않은 군대를 일본이 파병하자 즉각 철수할 것을 요구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본은 조선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일본은 거침없이 청국의 군대를 격파하고 중국 본토까지 진출했다.
청일전쟁은 시모노세키조약 체결로 끝났다. 이 조약의 주된 내용은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조선을 완전히 독립시킨다는 것이었으나 속셈은 조선의 지배권을 일본이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 전쟁으로 청국은 2만 명, 일본은 1만 명 정도의 군사가 전사했다. 그런데 조선은 5만 명 정도가 사망했다. 청국과 일본 간의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는 조선이었다. 우리나라 전쟁이 아님에도 우리 땅에서 벌어졌다는 이유로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동학농민운동 때는 정부가 아닌 일본군에 의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됐다. 내 선조인 차치구 증조할아버지도 우금치전투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셔서 그 아픔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일제가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 동안 많은 한국인들이 군대에 끌려가거나 일본 기업의 탄광이나 군수 공장에서 강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전쟁 막바지에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는 수만 명의 한국인들이 함께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매년 8월이 되면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 모습을 감추고 마치 원폭의 피해자인 양 가식적인 행동을 보였다.
얼마 전 대법원에서는 일제강점기에 징용으로 끌려가 강제 노동을 했던 한국인에게 일본 기업이 보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정부는 일본의 자금으로 만든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공식화했다. 일본 정부는 대법원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국가 간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불쾌해했다.
일본은 지금까지 일제강점기 때 벌인 참혹한 범죄들에 대해 제대로 인정한 적이 없다. 인정하지 않는다고 과거의 역사가 묻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수많은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몰인정한 태도 탓에 가슴의 한을 풀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거나 고령으로 노쇠해 가고 있다.
최근 일본 도쿄에서 방탄소년단의 공연이 있었을 때 우익단체들은 욱일기를 앞세우며 혐한 시위를 벌였다. 그럼에도 공연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미묘한 상황이지만 한일 양국의 젊은이들이 행복을 공유하고 교류하며 사이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한 어느 일본 젊은이의 말을 들었을 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가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됐다.
지금도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 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남북 문제에 대해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일본은 역사 왜곡을 여전히 멈추지 않고 있다. 한반도에서 그들만의 파워게임을 하는 것이다. 이제 정부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아니, 좀 더 일찍 그랬어야 했다. 목소리가 분명할 때 미래지향적인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차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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