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린 체니, 부통령 딕 체니는 어떻게 1인자를 능가하는 2인자가 됐을까

얼 골 2019. 4. 7. 16:07

부통령 딕 체니의 부인


 영화 '바이스'


영화 '바이스'
전례없는 권력 휘두른 실존 인물 통해
미국 정치 현실 비판적 묘사
코믹한 연출기법 두드러져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1년 9·11 테러라는 충격적 상황을 맞는다. 배후는 알카에다. 미국은 유럽과 손잡고 곧바로 알카에다의 근거지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다. 그리고 2년 뒤에는 이라크를 공격한다. 하지만 공격의 명분인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미국은 왜 국내외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를 공격한 것일까. 혹시 석유 때문이었을까.


명문대 퇴학생에서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11일 개봉하는 영화 '바이스'(원제 Vice)는 이 시기 미국의 권력자를 주목한다. 대통령이 아니라 부통령(vice-president)이다. 미국 부통령은 사실 대단한 자리가 아니다. 영화에서도 말하듯 상징적 존재일 뿐. 가장 중요한 임무는 대통령 유고 시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닉슨 대통령 사임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주인공 감은 아니다.
영화 '바이스'.의 주연배우 크리스찬 베일은 딕 체니의 젊은 시절부터 부통령 시절까지, 체중을 20kg 가까이 늘려 가며 연기를 했다. [사진 콘텐츠판다]


하지만 딕 체니(크리스찬 베일)는 달랐다. 대통령 못지않은 권력, 이 영화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초헌법적 권력까지 추구한 인물이다.
영화는 명문대에서 퇴학당한 주정뱅이 젊은이와 9·11직후 단호하게 명령을 내리는 부통령을 번갈아 보여주며 그사이의 삶을 펼쳐나간다. 여자친구 린(에이미 아담스)의 혹독한 훈계에 정신을 차린 젊은이는 미국 하원 인턴으로 출발해 백악관 최연소 비서실장 등 굵직한 이력을 쌓아간다.

정치인, 대기업 CEO, 다시 정치인
여러 대통령을 거치며 권력의 부침에 따라 물결을 타는 그의 모습은 종종 미국 역사의 중요한 사건을 환기 한다. 그의 삶만 보면 대체로 순탄하다. 영화 중반쯤이면 이미 정치에서 물러나 대기업 CEO로 여생을 즐길 분위기다.
영화 '바이스'의 딕 체니 부부와 조지 W 부시 부부. 이밖에도 여러 실존인물이 극 중 캐릭터로 등장한다.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도 이쯤에서 끝날 것처럼 엔딩크레딧을 잠시 등장시키는데, 이를 막는 제안이 튀어나온다. 부시 가문의 망나니 아들, 대선 출마를 앞둔 조지 W 부시(샘 록웰)가 부통령을 맡아 달라고 한 것. 노회한 체니는 그를 상대로 부통령직에 전례가 없는 권력의 발판을 얻어낸다. 두 사람의 결정적 대화 장면은 낚시장면과 교차해, 체니가 던진 미끼를 부시가 덥석 무는 것처럼 그려진다.
묵직한 소재를 이처럼 재기발랄하고 코믹하게 소화하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 감독 아담 맥케이는 금융위기가 배경인 '빅쇼트'에서도 실화를 요리하는 맛깔난 솜씨를 보여줬다.

부시는 미끼를 물었다.. 발랄한 연출
이번에는 더 거침없다. 체니와 동료들이 살벌한 선택을 하는 모습을 고급 식당에서 메뉴판 고르듯 묘사하는가 하면, 취임 이후 부통령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을 보드게임처럼 설명하기도 한다. 막판에야 정체가 밝혀지는 수수께끼 인물의 내레이션 역시 고품질 영상을 곁들인 인터넷 강의처럼 친절하다.
영화 '바이스'는 실존인물과 실제 사건을 종종 대담하고 코믹한 기법으로 표현해낸다. [사진 콘텐츠판다]


덕분에 미국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단시간에 복습하거나 새로 알게 된다. 마케팅 전문가를 동원해 토지 상속세를 '죽음에도 세금을 낸다'는 식으로 이름 붙여 공격하는 정치, 권력을 확장할 때마다 자문을 받아 법률 해석의 틈새를 찾아내는 용의주도한 정치인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내레이션에서도 말하듯, 세상 돌아가는 큰 문제에 관심 좀 갖자는 게 감독의 취지라면 그 성과는 어느 정도 뚜렷하다.

한때 대권도 꿈꿔..딸 때문에 포기
하지만 실존 인물의 전기에서 흔히 느낄 법한, 주인공에 대한 감정이입은 경험하기 힘들다. 이 영화에서 딕 체니에게 연민을 느낄 유일한 지점은 큰딸이 동성애자란 것. 이 사실을 처음 안 순간 주저 없이 딸을 안아준 체니는 대권의 꿈도 딸을 생각하며 접는다. 반면 평생 남편을 조련하고 격려한 파트너 린 체니는 그런 순간에도 권력에 미련을 갖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바이스'의 린 체니(에이미 아담스). 남편 딕 체니를 연애시절부터 정신 버쩍 나게 만든 조련사로 그려진다.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 '바이스'의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 의회 인턴으로 정치에 첫발을 들인 딕 체니에게는 멘토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에 나오는 여러 실존인물 중에 부시 행정부 국방장관을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스티브 카렐)와 체니의 관계도 눈길을 끈다. 처음 만날 당시 럼즈펠드는 하원의원, 체니는 의회 인턴에 불과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어느새 역전되는 지점은 1인자를 능가하는 2인자의 묘미가, 이 영화에서 좀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던 권력의 단맛 쓴맛이 번득인다.


바이스(vice)의 다른 의미는 악(惡)
주인공에 대한 이 영화의 시각은 어쩌면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영어 단어 'vice'는 부통령만 아니라 악(惡)을 뜻하기도 한다.
딕 체니는 정말 석유 때문에 이라크를 공격한 것일까. 이 영화는 대담할망정 무모하지는 않다. 석유관련 대기업 할리버튼에서 받은 대규모 퇴직금, 공직자 행동법규를 교묘히 비껴가며 업계 사람들과 만나는 모습 등을 보여줄 뿐이다. 체중을 20kg 가까이 불려 가며 체니를 연기한 배우 크리스찬 베일은 이 영화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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