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앨랜 스탠포드

얼 골 2015. 9. 29. 12:44

지구촌 인구 70억명 중 10억달러(1조원)이상을 번 사람은 수천 명에 불과하다. 굳이 비율로 따지자면 전 인류의 0.00003%정도다.

수감 중 재소자들에게 얻어맞아 다친 앨런 스탠포드.
수감 중 재소자들에게 얻어맞아 다친 앨런 스탠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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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앨런 스탠포드(Allen Stanford)
2009년 2월 19일(현지시간), FBI는 앨런 스탠포드(당시 56세) 당시 스탠포드금융그룹 회장을 워싱턴 남쪽 50㎞ 지점에서 찾아내 감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80억달러 규모 폰지사기(다단계 식으로 운영되는 사기성 투자)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스탠포드는 시장평균보다 금리를 더 쳐주는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았다. 하지만 지급된 이자는 사실 투자자 스스로 넣은 원금이었다. 이후 그는 2009년 초부터 투자자에게 약속한 고수익 지급이 가능한 지에 대해 당국의 의혹을 받았다. 같은 해 2월 17일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스탠포드를 기소하기 직전까지 그가 유치한 예금자 자산은 85억달러(한화 9조4000억원), 투자자는 130여개국 5만여명에 달했다.

기소 당시의 앨런 스탠포드.
기소 당시의 앨런 스탠포드.

기소 직후 스탠포드는 자신의 금융그룹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포함한 유력 정치인 다수에게 정치자금을 기부한 사실이 드러나 곤욕을 치루기도 했다.

결국 2012년 6월 14일, 미 지방법원은 스탠포드에 대해 “아주 죄질이 나쁜 사기”라며 징역 110년형을 선고했다. 이 날 증인으로 참석한 한 피해자는 “스탠포드는 서민들을 속여 왔다”며 “투자자들 대부분은 은퇴한 교사나 퇴역군인, 공장 노동자들이었다”고 말했다.

미국 텍사스 주에서 나고 자란 스탠포드는 휴지조각이 된 부동산을 사들여 시장 반등을 기다렸다 비싸게 되파는 방식으로 억만장자가 됐다. 1980년 대 초 텍사스산 원유 가격에 거품이 끼어 자산시장이 살아난 환경을 잘 이용했다. 잘 나가던 시절 그의 순자산은 최고 22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션 퀸
션 퀸

2. 션 퀸(Sean Quinn)
션 퀸은 한때 60억 달러의 부를 누린 아일랜드의 자수성가 사업가다. 그는 현지 재계에 미친 영향력 때문에 ‘마이티(Mightyㆍ힘센) 퀸’으로도 불렸다. 1975년 100파운드(18만원가량)를 빌려 광산업을 시작한 퀸은 아일랜드 경기 호황과 맞물려 호텔ㆍ부동산ㆍ보험 등으로 사업을 키웠다. 14개국에 70여 회사를 거느렸고, 전용 제트기까지 소유했다.

하지만 그릇된 판단이 퀸을 ‘알거지’로 내몰았다. 그는 2007년 앵글로 아이리시(이하 앵글로) 은행 파생상품에 투자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은행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결국 이 은행은 정부 구제금융을 받아 국유화됐다. 퀸은 앵글로 은행의 주가가 내려가는 기간에도 이곳에서 받은 대출로 투자를 늘리다 빚(28억 유로 규모)만 졌다.

2011년 영국령 북아일랜드 법원을 통해 파산 절차를 밟을 당시 퀸은 “1만1000유로(1500만원 가량)와 구식 벤츠 자동차, 땅 약간이 남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거액의 은닉 재산을 빼돌려 재기를 노리고 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다.

패트리샤 클루그
패트리샤 클루그

3. 패트리샤 클루그(Patricia Kluge)
패트리샤 클루그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이혼녀였다. 밸리댄서와 누드모델로 활동하며 사교계에서 이름을 얻은 그는 지난 1990년 미국의 언론재벌 존 클루그와 결혼생활을 끝내며 거액의 위자료를 받았다.

그가 위자료로 정확히 얼마를 받았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만 버지니아주에 있는 방 45개짜리 집(에버말 하우스)과 1214만㎡규모(구 367만2500여평)의 토지 등의 가치를 매겨 10억 달러 상당으로 추정된 바 있다.

그가 나락으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사업실패였다. 클루그는 세번 째 남편과 함께 거액의 재산을 기반으로 포도주 사업을 시작했지만 2011년 결국 파산했다. 사업이 망하기 전 그는 ‘파티 등을 자제하고 사업을 일으키겠다’고 다짐한다. 소더비 경매를 위해 자신이 수집해온 고가구 등을 팔아 1520만달러를 만들고, 모든 보석류까지 내다팔았다. 하지만 회사의 침몰을 막진 못했다.
당시 클루그가 제출한 파산보호 신청서에 따르면 남은 재산은 제로. 빚은 5000만달러에 달했다.

알베르토 빌라르
알베르토 빌라르

4. 알베르토 빌라르(Alberto Vilar)
미국의 투자자이자 ‘예술 기부자’로 유명했던 알베르토 빌라르는 그의 전공(경제학 석사)을 살려 1981년 아르메린도(Armerindo)라는 투자회사를 차린다. 한때 순자산 10억달러를 찍으며 빌리어네어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빌라르는 오페라 하우스 건립, 클래식 음악, 발레 등 예술분야에 거액을 기부한 것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기부 규모는 2억5000만달러를 넘겼다.

그러나 빌라르 또한 사기꾼이었다. 그는 2005년 고객의 투자금 500만달러를 개인 목적으로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아 체포됐다, 이후 투자회사를 이용해 돈세탁을 일삼고, 각종 조작과 눈속임 투자자문 등을 통해 주식사기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결국 빌라르의 예술사랑이 이같은 사기행각을 덮기 위한 눈속임이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2005년 이후 많은 예술 관련기관ㆍ단체들은 기부자 목록에서 그를 지웠다. 빌라르는 결국 2010년 9년형을 선고 받았다. 올 5월 형량은 1년 더 늘었다.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

5.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Bjorgolfur Gudmundsson)
아이슬란드 최고갑부였던 비요르골푸르 구드문드손은 한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의 구단주였다. 아이슬란드 제 2은행이었던 랜즈방키까지 갖고 있었다.
그는 아이슬란드의 ‘금융거품’을 배경으로 급성장한 부호였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조국의 파산 위기와 함께 그의 부도 일순간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년 간 제대로 된 펀더멘탈 없이 고금리 정책을 유지해 온 아이슬란드에 신용경색이 닥치면서 구드문드손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랜즈방키는 국가 소유가 됐고 3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빚만 떠앉게 됐다.

급기야 그는 2009년엔 법원에 파산신고를 했고 웨스트햄 구단도 매물로 내놓았다. 2008년 3월 포브스 조사에서 자산액 11억달러로 빌리어네어에 포함된 구드문드손은 같은 해 12월 ‘자산액 제로’의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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