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최능진 선생

얼 골 2015. 12. 14. 16:31

최능진(1899~1951년,52세) , 독립운동가 , 경찰

 

 

 

1915년(16세):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금릉대학에 잠시 적을 두었다.

1917년(18세):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미국대학을 졸업하고 워싱턴 YMCA 체육담당 간사를 맡는 한편 도산 안창호가 이끌

던 흥사단 운동에도 참여했다.

1929년(30세): 귀국해 평양숭실전문학교 체육과 교수로 부임(미국 유학시 체육학과 졸업).

1937년(38세): 안창호와 함께 "수양동우회 사건" 으로 구속되어 2년간 옥고를 치렀다.

1945년(45세): 8.15해방 직후 평남 건국준비위원회 치안부장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9월께 소련의 탄압을 피해 월남한 뒤 미군정에 의해 경무부 수사국장으로

발탁됐다.

1946년(46세):조병욱의 친일 경찰 등용과 부패에 항의하다가 경찰 간부직에서 밀려났다.

1948년(48세): 대한민국 정부 수립 당시 5.10총선거에 이승만이 출마한 동대문 갑구에 입후보하려

했으나 서북청년회와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의 지휘 아래 경찰의 잇단 방해로 후보

등록이 취소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극적으로 후보 등록을 했다.

 

이 때문에 이승만의 당선을 위협하는 "정적"으로 부각됐다고 한다.

그러자 동대문경찰서장 윤기병은 경찰을 동원하여 본인이 스스로 날인하지 않았다는 추천인들의

진술을 받아 선거관리위원장 노진설 대법관을 찾아가 등록을 무효화시킬것을 요청했고, 선거

2일전인 5월 8일 선거관리위원회는 추천인200명중 27명이 본인 날인이아니라는 이유로 최능진의

입후보 등록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최능진은 제헌 국회에서 대통령을 선출할 때 서재필을 옹립해 또다시 이승만에 대항했다.

 

결국 이는 최대 대통령 당선된 이승만에 눈밖에 나게 되어버리고 그해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한달 반만에 "국군 안에 혁명의 용군을 조직해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 는 죄목으로

징역 5년형을 선고 받았다.

 

한국전쟁이 터진 뒤 인민군 치하 서울에서 정전 평화 운동을 벌인 최능진은 결국 그 일로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1951년 2월 11일 경북 달성군 가창면에서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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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균형은 치우침이 없다는 것이다.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현상인것이다.

 

조화와 균형이 맞다는 것은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안정감이 있다는 것은 견실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특히 상법에서 이 조화와 균형을 중시 여긴다.

어디 상법만 그러하겠는가 우리 삶 자체가 조화와 균형이 맞아야지 어긋나면

실패가 따르고 액이 따르는 것이 자명한 것인걸

 

 

최능진 선생의 오관은 조화와 균형이 깨져있다.(좌측얼굴과 우측얼굴 비교)

 

이마는 넓고 시원하며 반듯하다.

하지만 눈썹, 눈, 귀, 콧방울 입이 조화와 균형이 깨진 파격이다.

 

파격인 상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상은 추하거나

악한 형상은 아니다.

어찌 보면 학자다운 면모가 강해보인다.

 

 

 

 

 

 

 

 

 

 

 

 

 

최선생은 52세에 총살을 당했다.

52세는 선고부위에 해당한다.

 

최능진 선생은 결국 친일파세력 에게 희생당하셨다.

시대적인 비극인 것이다.

지금 같으면 이런 일이 벌어지겠는가?

시대적인 상황과 운명과는 깊은 관련이 있다.

그래서 밀려드는 검은 그림자도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지금 같은 시대라면

과연 총살을 당했겠는가?

물론 이렇게도 말할수 있다.

총살을 당하지 않았으면 다른 일로 인해 죽었을 거라 말할수 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상이 그러면 그에 맞는 운명이 주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대의 상황과 현대의 상황이 다르듯

타인에 의해 그것도 비참하게 총살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본다.

 

총살을 당한것에 너무 집착하는것 같으나

어찌 하리요

총살을 당한것이 사실이며 그렇게 죽지 않아도 됬을것을 하는 생각이

이런 글을 쓰게 된것이다.

 

 

어찌 되었건 조화와 균형이 중요한 것 만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