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자취를 감춘 한반도의 남쪽 산야에서 담비가 ‘최상위 포식자’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09년부터 올해까지 지리산과 속리산에 서식하는 담비의 행동권역과 습성을 분석한 결과 자신보다 훨씬 큰 멧돼지와 고라니 등 대형 포유류를 주된 먹이로 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13일 밝혔다. ‘담비가 여럿 모이면 호랑이도 잡는다’는 옛말처럼 사실상 야생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족제빗과에 속하는 몸 길이 45~60㎝ 정도의 담비는 잡식성 동물이고 멸종위기종으로도 분류돼 있다.
담비는 민첩하고 유연한 ‘무리 사냥’을 하고 있다. 국립환경과학원 최태영 연구사는 “먼저 한 마리가 고라니, 멧돼지 등 대형 포유류의 등에 올라타 귀와 눈 등을 물어뜯기 시작한다”며 “앞이 안 보이게 된 멧돼지가 주저앉으면 다른 담비들이 달려들어 함께 공격한다”고 말했다. 그는 “호랑이 같은 대형 맹수처럼 단숨에 숨통을 끊는 방식은 아니다”라며 “눈에 남은 담비 발자국과 담비가 사냥한 흔적 등을 통해 담비의 먹이를 분석했다”고 덧붙였다.
고라니 사냥해 뜯어먹는 담비들 담비 두 마리가 지리산 성삼재 부근에서 사냥해서 먹고 남겨놓았던 고라니의 사체를 다시 찾아와 뜯어먹는 모습이 무인센서카메라에 포착됐다. | 국립환경과학원 제공 |
국립환경과학원은 포획한 담비 몸에 전파발신기를 붙여 원격 추적하면서 전자현미경을 이용해 잡식성인 담비의 배설물도 분석했다. 살펴본 배설물 414점에서는 멧돼지·고라니 등 대형 포유류가 8.5%를 차지했다. 청설모·다람쥐·멧토끼·두더지·말벌 등도 담비의 먹잇감으로 확인됐다. 동물성 먹이가 50.6%를 차지했고 다래·버찌·머루·감 등 식물성 먹이는 49.4%였다.
보통 3마리씩 무리지어 다니는 담비의 한 무리가 1년 동안 고라니나 멧돼지 9마리, 청설모 75마리를 잡아먹는 것으로 분석됐다. 담비는 보통 어미와 새끼 2마리, 또는 수컷 3마리 정도가 무리를 이뤄 다닌다. 야행성이지만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활동한다. 새끼는 생후 1년이 되면 어미로부터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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