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일도 있다.

집권 '4년차 징크스'..

얼 골 2016. 2. 28. 13:05

1991년, 1996년, 2001년, 2006년, 2011년…. 5년 터울의 이 해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민주화 이후 역대 정권의 집권 4년차라는 점이 그것이다. 해당 연도의 12월 하순에 여러 언론에서 우후죽순처럼 쏟아진 ‘국내 10대 뉴스’를 한 번 검색해보라.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어구들이 있다. 권력형 비리, 부정부패, 게이트, 스캔들….

청운의 꿈을 품고 출범한 역대 정권들은 집권 4년차 되는 해에 집중적으로 터진 대통령 측근 등의 비리 의혹에 휘말려 휘청거리다 결국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이미 시작된 ‘레임덕’은 현직 대통령에게 국면을 전환하고 실책을 만회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를 열겠다던 노태우도, ‘정치 9단’이라는 김영삼(YS)과 김대중(DJ)도, ‘타고난 승부사’라던 노무현도, ‘국민 성공신화’를 쓰겠다던 이명박(MB)도 집권 4년차 게이트의 수렁을 비켜가지 못하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지난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 3주년이 된 날이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집권 4년차에 대통령 측근의 비리 등 초대형 악재가 터지며 레임덕이 가속화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3주년을 맞았다. 그리고 올해 2016년은 박근혜정부의 집권 4년차다. 역대 대통령 어느 누구도 빠져나가지 못한 집권 4년차의 징크스. 친인척 관리에 엄격하고 측근도 까다롭게 고르기로 유명한 박 대통령은 과연 이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마침 권력형 비리를 수사할 검찰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출범과 맞물려 현 정부 집권 4년차에 법조계 이목이 쏠린다.

◆‘수서 비리’로 얼룩진 노태우정부 4년차

노태우정부 집권 4년차인 1991년 벽두 세계일보의 특종 보도 하나가 정국을 뒤흔들었다. 흔히 ‘수서 비리’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수서·대치지구 불법개발 사건이 그것이다. 이 사건은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던 수서·대치 지역 공공용지 11만7300㎡(약 3만5380평)가 개발제한구역 안에 들어 있어 주택 신축 등이 불가능했는데도 서울시가 이곳에 아파트를 건립하려는 26개 주택조합에 건축 허가를 내주며 촉발됐다.
노태우정부 집권 4년차에 터진 ‘수서 비리’ 재수사를 촉구하는 경실련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수서 비리는 가뜩이나 정통성 시비에 시달린 노태우정부에 치명타로 작용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대통령 측근 등 정치권의 압력과 한보그룹의 로비를 받은 서울시의 전격적인 허가 발표는 ‘현행법에 어긋난 특혜 행정’이라는 비난과 함께 공영택지 개발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해결사’로 나서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과 국회 건설위원장이던 민자당 오용운 의원 등 국회의원 5명을 구속했다.

이 사건으로 대검 중수부는 ‘사정수사 사령탑’으로 위세가 드높아졌지만, ‘보통사람을 위하겠다’던 노태우정부는 ‘결국 특권층만을 위한 정권’이란 비난을 받으며 크게 흔들렸다. 노태우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도 급속히 약화해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차기 주자’로 성큼 올라섰다.

◆“학로야, 너마저…” 측근 배신에 운 YS

1996년 초입 정국은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짙은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1992년 대선 패배 직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DJ가 ‘새정치국민회의’라는 정당을 세워 총선에 도전했다. ‘양김시대’가 영원히 청산돼야 한다고 믿은 YS는 극도의 분노와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1996년 4월로 예정된 15대 총선은 DJ와 YS의 명운을 건 사실상의 ‘마지막 승부’였다.
김영삼(YS)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질문할 기자를 직접 지명하는 등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집권 4년차인 1996년 측근 비리가 불거지며 국정 장악력을 잃은 YS는 이후 여야 정치권에 끌려다니다 임기를 마쳤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새해 개막과 동시에 YS 쪽에 악재가 터졌다. ‘나는 물론 측근 누구도 기업에서 단 한 푼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YS의 핵심 측근인 장학로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17개 기업에서 총 27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의혹이 DJ 측의 폭로로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천문학적 비자금을 파헤치고 있던 YS 정부 입장에선 ‘X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비아냥을 들어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장씨는 서울지검 특수1부 수사를 받고 전격 구속됐다. 장씨에 대한 배신감이 얼마나 컸던지 YS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내 측근과 가신들 계좌까지 전부 샅샅이 뒤지라”고 지시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하지만 같은 1996년 10월에는 이양호 국방부 장관 본인이, 11월에는 이성호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이 각각 비리에 연루돼 구속되며 YS 정부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DJ, 노벨상의 영예를 ‘게이트’로 날리다

2000년 한반도는 흥분했다. 1945년 분단 이래 55년 만에 남한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른바 6·15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을 때 전국은 통일이 당장이라도 이뤄질 것 같은 열기에 휩싸였다. 이 일로 DJ는 그해 말 한국인으로는 처음 노벨평화상을 받으며 국민적 자부심을 한껏 드높였다.
김대중(DJ) 대통령이 평양에서 김정일과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역사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으로 2000년 노벨평화상을 탄 DJ는 이듬해인 2001년 아들의 비리 등 온갖 게이트가 터지며 노벨상의 영예마저 날리고 말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이듬해인 2001년 여기저기서 터진 ‘게이트’로 DJ 정부는 만신창이가 됐다. 197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워터게이트’ 사건 이래 권력형 비리를 뜻하는 관용적 표현이 된 ‘게이트’가 DJ 집권 4년차인 2001년만큼 흔하게 쓰인 해도 없을 것이다.

홍콩에서 살해당한 한국 여성 수지김 사건을 14년 동안 은폐한 것으로 드러난 ‘윤태식 게이트’, 2300억대 불법대출과 주가조작으로 경제계를 뒤흔든 ‘진승현 게이트’, 680억대 횡령이 적발된 ‘이용호 게이트’ 등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용호 게이트’는 정치인과 검찰 간부, 국가정보원 간부, 금융감독원 간부 등이 두루 연루돼 ‘부정부패 종합 선물상자’란 말까지 나왔다. DJ의 아들 김홍업씨와 처조카 이형택씨, 신승남 검찰총장의 동생 등 권부 핵심 인사들의 비리가 줄줄이 드러났다.

결국 DJ는 노벨상 수상의 영광을 뒤로 한 채 사과를 위해 국민 앞에 서야 했다. “저는 결국 국민 여러분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저는 자식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책임을 통절하게 느꼈습니다.”

◆‘포스트 양김’ 盧·MB도 징크스 못 피해

노무현정부 집권 4년차인 2006년 대한민국이 갑자기 ‘바다이야기’ 파문에 휘말렸다. 사행성 게임인 ‘바다이야기’가 전국 곳곳으로 독버섯처럼 퍼져 나가며 도박 중독자가 급격히 늘었다. ‘바다이야기’의 배후에 노무현 대통령의 386세대 측근들이 있다는 소문도 급속히 퍼져나갔다.

사실 2006년 초는 희대의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 사건으로 온 나라가 뜨거웠다. 차관급 예우를 받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브로커에게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자 사법부와 법관을 바라보는 민심이 흉흉해졌다. 그런데 ‘바다이야기’ 사건이 터지며 김홍수씨 사건은 쑥 들어갔다. 당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던 김현웅 현 법무부 장관이 남긴 ‘바다가 홍수를 덮었다’라는 농담이 유행어가 됐다. ‘개혁’과 ‘도덕성’을 무기로 내세웠던 노무현정부은 그렇게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결국 침몰하고 말았다.
이명박(MB) 대통령이 측근과 정권 실세 등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 발생과 관련해 고개를 숙여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MB 집권 4년차인 2011년 저축은행 사건을 시작으로 온갖 부정부패 사건이 발생하며 MB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명박(MB)정부 집권 4년차인 2011년은 ‘저축은행’이 단연 화두였다. 서민들의 쌈짓돈을 맡아 보관하던 저축은행들이 정치권력과 유착한 경영주들의 비리와 방만한 운영 탓에 파산하는 사례가 빈발하며 대중의 분노가 폭발했다. 2009년 ‘박연차 게이트’ 수사 이후 한동안 손을 놓았던 대검 중수부가 다시 가동될 정도로 정권 핵심부와 검찰이 느낀 위기감은 대단했다.

은진수 감사원 감사위원 등 MB 측근들이 줄줄이 수사선상에 오르며 MB의 국정 장악력은 급속히 떨어졌다. MB의 다른 측근인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은 SLS 이국철 회장에게서 거액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 등 핵심 실세는 물론 MB의 형인 이상득 새누리당 의원 이름까지 거론될 만큼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갔다. 집권 초의 ‘국민 성공시대’ 다짐은 어디로 사라지고 어느덧 MB 혼자 권좌에 앉아 쓸쓸히 석양만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