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헤르만 불

얼 골 2016. 3. 7. 16:19

 헤르만 불', 등반사에서 그가 1953년에 이룩한 낭가파르바트 세계 초등은 유명한 사건이라고 한다. 산악사진사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이 그의 초등 직전과 직후의 사진들이다.

초등 직전의 사진 속에 나오는 29세의 싱싱한 청년의 얼굴은 초등 직후에 찍힌 사진 속에선 거의 80 노인처럼 보인다. 그가 홀로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마지막 캠프로 돌아오는데 소요된 시간, 정확히 41시간이 그의 외모를 그렇게 만들었다하니 그 시간들이 짐작이 간다.그 처절하고 감동적인 기록이 바로 그의 유일한 자서전 ‘8,000미터의 위와 아래’이다.

그가 인류 최초로 배낭도, 산소통도 모두 집어 던지고 혈혈단신으로 8,000m 급 산의 정상에 올랐다가 살아서 돌아왔다는 것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대기록으로 그는 23세가 되기 전에 134개의 봉우리에 올랐으며 남들은 여름철에 오르는 암벽을 눈과 얼음이 뒤덮인 겨울철에 올랐다고 할만큼 준비에 철저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침내 1953년의 독일-오스트리아 낭가파르바트 원정대원으로 발탁되었을 때,
헤르만 불은 마치 낭가파르바트에 오르기 위하여 태어나고 살아온 사람처럼 그 산에 올랐다. 그리고 최후의 순간, 원정대장이 귀환을 명령하고 함께 오를 동반자마저 시야에서 사라져버린 바로 그 순간 그는 모든 장비들을 집어 던지고 홀로 정상을 향하여 나아갔다.


- 내가 인상 깊게 읽었던 기고문의 일부분을 그대로 옮겨 본다. -

"헤르만 불이 낭가파르바트의 정상에 선 것은 1953년 7월 3일 오후 7시였다. 간단히 말해서 되돌아오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다. 그는 캄캄한 밤에 저 홀로 하산을 시작한다. 언제나 그렇듯 등정보다 힘든 것이 하산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이젠 한 짝이 등산화에서 벗겨져 천길 낭떠러지 아래로 사라져버린다. 그에게 남은 장비라고는 이제 등산용 스틱 두 개와 아이젠 한 짝 뿐이다. 정상 부근에는 잠시 궁둥이를 대고 앉아서 쉴만한 공간도 없다.

그는 이 상태에서 꼿꼿이 선채로 비박에 돌입한다. 세계 등반사상 가장 유명한 죽음의 비박이다. 그의 자서전 ‘8,000m의 위와 아래’에는 이 장면에 대한 묘사가 압권이다. 그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버린 초인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게는 추위를 막을 비박색도, 추락을 예방해주는 확보용 자일도 없으나, 앞으로 다가올 밤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편안했다. 모든 일이 그저 당연하기만 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는 잠들면 죽는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면서도 깜빡 깜빡 잠이 든다. 그때마다 자신이 서 있는 곳을 확인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발 밑에는 시커먼 지옥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 하늘에는 아직 별이 있었다. 날이 밝지 않았나 보다.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해가 떠오를 지평선에 시선을 던졌다. 마침내 마지막 별도 흐려졌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최초로 '낭가파르바트'에 올랐던 '헤르만 불'에 대한 감회어린 등정 소감을 밝혔던 '고미영' ,

그녀의 생명과도 같은 산에서의 죽음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

(24년생인 '헤르만 불' 역시 57년 '초고릴사'산 등정중 조난으로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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