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오만증후군

얼 골 2018. 3. 15. 13:55

권력은 뇌를 망친다고 한다. 역사학자 헨리 애덤스는 “권력은 마치 환자의 공감 능력을 모두 죽이는 종양과 같다”고 했다. 대커 켈트너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캠퍼스 심리학과 교수가 수년간 연구와 현장 실험을 통해 도달한 결론도 같았다.

그가 20년간 추적조사를 한 결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정신적외상을 유발하는 뇌 부상을 당한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권력을 가지면 더욱 충동적으로 변하고 위험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지며 타인을 생각하는 능력이 현저히 저하됐다.


중학교 때 일이다. 동네에서 친하게 지냈던 형이 있었다. 형은 D고등학교, 나는 D중학교를 다녔다. 형은 2학년이 되면서 규율부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형은 달라졌다. 교칙을 준수하는 것을 요구했고 내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완장을 찬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무섭다지만 내게도 그렇게 엄하게 대할 줄은 몰랐다. 

형의 변화에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형이 대학에 간 뒤에 우연히 만났다. 형은 예전처럼 다정하게 “길진아, 잘 지냈어?”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나는 동네 형으로 다시 대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완장을 차고 학생들을 괴롭히던 형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출근하시기 전에 주문을 외우듯 말씀하셨다. “나는 오늘도 남이 사 주는 자장면은 절대 먹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자신의 권력을 함부로 쓰시는 일이 없었다. 항상 민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으로 경찰직을 수행하셨다. 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도 어린 내게 “절대 벼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하셨는지 모른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드니 더욱 아버지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수술을 받고 열흘 정도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S대 의대를 졸업한 부부 의사가 생각났다. 1990년대 말로 기억한다. 부인은 세계적인 마취과 의사였지만 뇌종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녀가 잠실 후암선원에 찾아와 내게 물었다. “법사님, 내가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으면 정말 영혼이 있나요”라고 물으면서 “아, 내 머리는 가발이에요”라고 말하며 발랄하게 웃었다. 

그녀가 가발이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나는 몰랐을 것이다. 화장도 곱게 하고, 옷도 예쁘게 입어서 죽음을 앞둔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난날을 회상했다. “의사가 된 뒤로 고등학교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어요. 나도 모르게 의사가 됐다고 오만하게 행동했었나 봐요.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고등학교 친구들이 정말 보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네요.” 

잘나가는 의사자 교수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았던 그녀는 뇌종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되자 과거 오만했던 행동을 반성했다. 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하는 여학생이었을 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그리웠지만 마음의 상처를 받은 친구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모든 세포는 죽지만 암세포는 죽지 않는다. 그래서 살려고 발악하는 세포가 암으로 변이됐다는 학설이 있다. 인간도 순리대로 따르지 않으면 암세포 같은 사람이 된다. 만약 권력을 가졌거나 잘나가는 위치에 있다면 한번쯤 자신이 암세포 같은 사람은 아닌지 오만증후군에 빠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나를 만나고 3개월 뒤에 조용히 생을 마감한 마취과 여의사처럼 좋은 친구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추억마저 사라져 후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차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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