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흑역사'라는 단어에 대해 '연금술 등은 그래도 과학 발전(특히 화학 분야)에 기여했는데 어떻게 흑역사인가'라는 일각의 지적이 있었다. 맞는 말이다. 연금술이 얼마나 과학적이었는지를 떠나 실제 화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흑역사라는 단어는 이 코너의 특성상 좀 더 쉽고 재미있게 과학자들의 실수를 다루기 위해 사용한 용어라는 점을 밝혀둔다.)
지난주 아이작 뉴턴과 조지프 프리스틀리에 이어 (하)편에서도 과학자들의 실수는 이어진다.
이탈리아 생리학자 마르첼로 말피기(1628~1694년)는 전성설을 신봉했던 과학자다. 현미 해부학의 창시자인 말피기는 신체 내장의 미세 구조에 대한 중요한 연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물 시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말피기소체'란 이름이 익숙할 것이다. 말피기는 곤충의 배설기관인 말피기관과 신장의 신소체를 발견했는데 신소체를 발견한 공로로 그의 이름을 딴 '말피기소체'가 만들어졌다.
말피기는 전성설 신봉자였다. 그리스 시대부터 시작된 전성설은 수정란이 발생해 성체가 되는 과정에서 개개의 형태·구조가 이미 알 속에 갖춰져 있다는 학설이다. 발생 과정에서 필요한 기관이 하나씩 만들어진다는 후성설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즉 전성설은 정자 속에 아주 작은 모양을 한 인간이 있고 이 인간이 몸집만 점점 커져서 아이가 된다는 주장이다. 배아가 분할하면서 각각의 기관이 만들어지는 것으로 배운 현대인들이 들었을 땐 다소 황당한 논리다.
물론 당시로선 전성설을 반박할 만한 방법이 없어 이 학설이 힘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전성설은 19세기 후반 현미경이 발달하면서 생식세포가 피부세포나 뇌세포가 없는 단일 세포라는 것이 확인되면서 몰락했다. 전성설을 믿은 과학자들은 자신의 믿음이 옳기를 두 손 모아 기도했겠지만 현미경으로 관찰한 결과 정자 안에는 작은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전성설은 과학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헬몬트는 '자연발생설'을 믿었다. 어버이가 없이도 생물이 생길 수 있다는 이론으로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던 민달팽이, 개구리, 쥐 등이 어디선가 돌연히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돼 이 이론이 만들어졌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무척추동물만이 아니라 고등척추동물도 자연발생한다는 이론을 내놓기도 했다. 17세기엔 장독에서 새끼 쥐를 낳게 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밀로 가득 채운 통의 주둥이를 더러운 셔츠로 막은 뒤 21일 동안 놓아두면 냄새가 변하는데 이 분해물을 밀이 담긴 그릇에 부으면 밀이 생쥐로 변한다는 다소 괴상한 이론이었다.
자연발생설은 1862년 프랑스의 세균학자 루이 파스퇴르의 백조목 플라스크를 통해 틀렸다는 것이 입증된다. 파스퇴르는 플라스크에 고기 수프를 넣고 플라스크의 목을 S자로 구부린 뒤 수프를 가열해 살균했다. 수프가 끓으면서 발생한 수증기가 플라스크 목에 고이면서 공기 중 미생물의 침투를 막았고 수프는 상하지 않았다. 이를 통해 자연발생설은 그 힘을 잃고 사라지게 됐다.
말피기나 헬몬트는 그래도 웃고 넘어갈 수 있는 에피소드 정도로 볼 수 있다. 당시로선 그들이 믿었던 '과학'을 증명할 수 있는 실험 방법이나 도구 등이 발명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이제 소개할 인물은 잘못된 믿음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몸소 보여준 사람이다.
문제는 리센코가 프랑스의 동물학자이자 진화학자인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에 심취해 있었다는 점이다. 용불용설은 자주 사용하는 기관은 세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하고 쓰지 않는 기관은 퇴화한다는 이론이다. 1900년대 이어진 여러 연구를 통해 용불용설은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리센코는 이런 과학적인 근거들을 무시하고 뚝심 있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갔다. 공산당의 지지를 등에 업은 그는 농업과학 아카데미 수장 자리까지 꿰찬다. 리센코는 이후 자신에게 (학문적·정치적으로) 반대하는 모든 유전학자, 농학자들을 파시스트, 부르주아로 몰아 숙청해버린다. 반대하는 목소리가 줄어들면서 그의 이론은 여러 정책에 접목된다.
리센코의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리센코를 비호해주던 스탈린의 사후 1960년대 등장한 여러 과학자가 리센코의 이론을 비판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실각 후 학계에서 퇴출됐다. 1960년대 서구에선 분자생물학이 태동하던 무렵이었다. 반면 소련은 리센코 참사를 겪으면서 생물학, 농학이 몰락하고 말았다. 잘못된 이론이 폐쇄된 사회에서 지배적인 자리에 오르자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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