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폰 노이만

얼 골 2018. 1. 30. 17:45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헝가리 출신 미국인 수학자이다.

          

1957년 2월 8일. 그가 이날 죽지 않고 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인류는 이미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임종 직전까지도 소련에 수소폭탄을 날리자고 주장했으니까.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천재로 꼽히는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 얘기다. 한동안 노벨 경제학상을 휩쓸던 게임이론의 창시자다. 컴퓨터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하다.

190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유대계 독일인 부모 아래 태어난 그의 전공은 수학. 부다페스트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던 23세에는 이미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있었다. 부전공인 물리학과 화학에서도 당대 최고의 석학으로 인정받았다. 학문이 꽃핀 곳은 프린스턴대학의 고등연구소. 1933년 아인슈타인과 함께 이 연구소의 종신교수로 부임한 이래 수학과 물리학은 물론 경제학, 컴퓨터공학에도 업적을 남겼다.

경제학자로서의 업적은 크게 두 가지. 게임이론과 '미니맥스 정리(이해가 상반되는 두 경기자는 자기의 이익을 최대로 하고, 상대편이 취하는 전략으로 입을 수 있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원리)'다. '제로섬 게임(참가자가 각각 선택하는 행동이 무엇이든 참가자의 이득과 손실의 총합이 제로가 되는 게임)'이며 '죄수의 딜레마(협력을 통해 서로 이익이 되는 상황이 아닌 더욱 불리한 상황을 선택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 등도 그에게서 비롯되었다. "경제학은 고등학문인 물리학에 비하면 석기시대 학문에 속한다"며 기존의 학설을 무시한 그는 경제를 다수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게임으로 간주했다. 수학과 게임이론을 동원하면 경제뿐 아니라 정치와 외교 정책의 모범 답안까지 낼 수 있다고 확신한 노이만은 원자탄 개발 계획인 맨해튼 계획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자탄 투하 지점으로 정해진 데에도 노이만의 '최대의 폭격 효과' 계산이 한몫했다. 노이만 게임이론의 극치는 대소 선제 핵공격론. 노이만의 사망으로 폭격도, 3차 대전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게임이론의 호전성이 한반도를 노렸던 적도 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 공격론의 이론적 배경이 바로 게임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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