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계올림픽에서 최연소로 첫 금메달을 딴 클로이 김(18·미국)은 어린 나이에 스노보드에서 두각을 나타낸 엘리트였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이다. 그는 4세 때부터 아버지(김종진씨)를 따라 스노보드를 타기 시작했다. 클로이 김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하는 데 있어 아버지의 헌신적인 뒷바라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스노보드 재미에 푹 빠진 딸의 발전 가능성을 확인했다. 그리고 생업을 접고 딸과 함께 눈이 쌓인 산으로 갔다. 아버지는 클로이 김을 매일 차에 태워 스키장으로 태워주고 데려왔다. 6세에 전미 스노보드연합회에서 주최한 내셔널 챔피언십 3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클로이 김은 나이 제한에 걸려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5년 겨울 X게임에서 금메달을 땄고, 지난해 2월 US그랑프리에서 여자 선수 최초로 1080도(3바퀴) 연속 회전에 성공하며 사상 첫 100점 만점을 기록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6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 유스올림픽에선 2관왕에 올랐다. 당시 미국 선수단 기수를 맡기도 했다.
클로이 김은 현재 전세계 소년들의 우상이다. 그는 2016년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대 30명에 뽑히기도 했다. 현재 클로이 김은 세계적인 기업들의 전폭적인 후원을 받고 있다. 도요타, 아모레퍼시픽, 버튼, 비자 등이 클로이 김을 돕고 있다.
엄마와 아버지가 한국인이라 특히 많은 한국팬을 보유하고 있다. 클로이 김의 부모님은 1982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한국에 클로이 김의 친척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도 클로이 김의 가족들이 현장 관전했다.
재미교포로 미국 스노보드 국가대표인 클로이 김이 격이 다른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냈다
다음은 클로이 김에 대해 알아야할 8가지다.
1.클로이 김의 한국 이름은 '김선이'다.
2.클로이 김의 부모님은 한국인으로 약 20여년전 캘리포니아로 이민했다.
3.4세때 스노보드를 시작해 6세부터 주목받은 클로이 김은 11살의 나이에 성인무대에서 3위를 기록했다.
4.16세 이전 연속 3개 엑스게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다.
5. 2016 US 스노보드 그랑프리에서 여자선수 최초의 2연속 1080도 회전 성공으로 월드컵 사상 첫 100점 만점을 받았다
6.100점 만점의 기록은 남자 선수인 숀 화이트와 더불어 두명만 가진 기록이다.
7.클로이 김은 K팝을 매우 좋아하며 슈퍼주니어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져있다.
8.클로이 김은 영어, 한국어, 프랑스어까지 구사할 수 있다. 어린 시절 한국어, 프랑스어를 배웠다고 한다. 선수촌에서 미국 선수들을 위해 통역까지 하고 있다.
클로이 김이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건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고, ‘스노보드 대디’가 빚은 작품이기 때문. 클로이 김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난 재미교포 2세로 한국 이름은 김선이다. 부친인 김종진(62) 씨는 딸의 성공을 위해 인생을 바쳤다. 김 씨는 1982년 100달러짜리 8장과 영어사전을 들고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옮겼다. 미국에 도착한 지 1주일 만에 고작 100달러밖에 남지 않은 김 씨는 햄버거 가게에서 설거지를 하는 한편 편의점 점원으로 일하며 닥치는 대로 돈을 모았다. 그리고 2000년 클로이 김이 세상에 나왔다.
김 씨는 클로이 김이 4세 되던 해 처음으로 스키장에 데려가 ‘눈의 세상’을 보여줬고, 이듬해 25달러짜리 스노보드를 클로이 김에게 선물했다. 왁싱을 하면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양초를 녹여 직접 스노보드에 발라줄 만큼 정성을 다했다.
클로이 김은 6세가 되던 해 전미스노보드연합회에서 주최한 내셔널챔피언십에서 3위에 오르며 천재 소녀라는 별칭을 얻었다.
김 씨는 클로이 김이 8세가 되자 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스노보드를 즐길 수 있도록 스위스 제네바로 이사했고, 매일 오전 4시 제네바에서 출발해 기차를 두 차례 갈아타고 훈련장이 있는 프랑스 아보리아까지 딸을 데려다주는 등 극진하게 보살폈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에도 훈련을 위해 오전 2시 기상, 잠자는 클로이 김을 업어 차에 태운 뒤 6시간을 달려 캘리포니아주 매머드산으로 데려갔고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곤 했다.
클로이 김은 “아버지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나도 없다”며 “아버지의 돌봄에 항상 감사한 마음을 지니고 있고,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김 씨는 딸과 함께 고국 땅을 밟고 평창 휘닉스스노경기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클로이 김을 응원하고 있다. 이제 클로이 김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스포츠 스타가 됐다. 클로이 김은 이달 초 전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미국프로풋볼(NFL) 슈퍼볼 광고에 아버지와 함께 등장, 대중적인 인기를 인정받았다. 김 씨는 “딸의 일이라면 지금도 뭐든지 할 수 있다. 딸 덕분에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며 활짝 웃었다
클로이 김의 부모님은 모두 한국인이다. 클로이 김 역시 겉모습은 한국인과 다르지 않다. 재미교포 2세로 국적은 미국이지만, 클로이 김은 "부모님의 나라 한국을 사랑한다"고 말해왔다
이날 시상대에 오른 뒤 눈물을 훔친 클로이 김은 "해냈다는, 이겼다는 생각에 흘린 행복의 눈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평소에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고 말하는 클로이 김이다
클로이 김은 "아버지는 많은 것을 희생하셨다. 내가 만약 아버지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며 "자신의 아이가 스노보드에 엄청난 열정을 보인다고 그 아이를 따라다닌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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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보드 천재'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이 13일 강원도 평창군 휘닉스 스노경기장에서 열린 2018 평창동게올림픽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후 재미교포 아버지 김종진, 어머니 윤보란씨와 경기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2018.2.13/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
가족들도 울었다. 이날 휘닉스 스노경기장에는 부모님과 두 언니가 찾아와 응원을 했다. 클로이 김은 "아버지는 안 울었지만 어머니와 동생은 울었다"며 "(한국에 있는 남은 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 하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금메달이 확정된 뒤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가족이었다. 클로이 김은 가장 먼저 생각난 한국 단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엄마, 아빠, 가족"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