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서구 암남동에 사는 김정남씨
"15시간 가까이 바다 한가운데서 헤엄을 쳤으이 너무 힘들었지. 이래 죽는구나 했지.
근데 뭐시 배 밑에서 쑤욱 올라오는기라. 숨소리 같은 게 나더라고. 응급질에 엄마야 하고 붙잡았지.
눈 떠보이 거북이더라고. 잡을 때는 몰랐지. 잡고 보이께네 거북이라."
김정남(75) 씨는 48년 전 일이 아직도 생생한 듯 며칠 전 일처럼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때 내가 탄 일본 상선이 일본에서 뉴욕으로 가는 길이었지.
파나마 들어가기 하루 전날.
동료들끼리 술 한 잔 하고 더버서 갑판 쪽에 나왔는데 갑자기 롤링이 심해져가 물에 빠진기라.
새벽 1시 반인가 떨어졌는데, 그다음 날 오후 5시까진가 떠밀려 다녔지."
김 씨는 당시 운동한 몸이라 버텼지,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을 일이라고 했다.
더욱이 김 씨가 빠졌던 해역은 상어떼가 득실대는 바다였다.
2시간여가 지났을까.
기력을 잃고 거북이 등에 쓰러진 김 씨에게 또 한 번 기적이 찾아왔다.
저 멀리 스웨덴 선적의 배 한 척이 나타난 것.
화물선 '시타델 호'에 타 있던 항해사는 그를 못 봤지만, 아래에서 일하던 선원이 그를 발견했다.
"배가 저 수평선에 뜨는데 내하고 딱 일직선이더라고. 아차, 살았구나 싶어 내가 고함을 질렀지. 손을 흔들고."
그가 살아날 운명이었던지, 마침 선원들은 일할 시간이 아닌데도 '오버타임' 근무를 하고 있었다.
그는 고마운 거북을 잘 가라고 밀어주고, 선박을 향해 있는 힘껏 헤엄쳐 나갔다.
시타델 호에 구조된 김 씨는 미국 LA로 들어갔고 뉴욕타임스 호외에 기사가 실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한국에도 곧 이 소식이 타전됐다.
한국에서는 김 씨 어머니가 하루도 빠짐없이 용왕제를 지낸 덕에 김 씨가 전래동화 속 주인공처럼 살아났다고 했다.
"어머니가 매일 용왕제를 지내셨나 봐.
그리고 예전에 아버지가 어선을 한 척 몰았는데 촌에서. 거북이가 한 마리 그물에 걸리더라네.
그 거북을 술을 먹여 보냈대.
그래 그때는 술을 먹여 보내면 좋다 해서 그랬다네.
근데 아버지 말은 가면서 그 거북이 계속 돌아보더래.
몇 번을 돌아보더래.
그러이 미신이 아주 없다고는 못하지 나는."
영도 영선사에 가면 김 씨 어머니의 공덕을 그린, 공덕비도 아직 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지도 상선 선장으로 배를 몰았던 그는 선원들에게 산 고기 잡지 말라, 낚시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지금도 아내와는 정월 초하루와 보름이면 막걸리와 북엇국을 끓여 용왕제를 지낸다고.
당시 이 사건은 UPI, API 등 세계 유수 통신사에 의해 세계로 전해졌는데,
1969년 아폴로 11호 달 착륙과 함께 10대 뉴스 후보로도 거론됐다.
이후 김 씨는 한국에서 10대 가요제 심사위원으로 출연하기도 했고,
'거북이표' 비누 회사에서는 평생 비누를 주겠다고 약속해오기도 했다.
이후 비누 회사는 없어졌다.
지금도 그는 동네에서 '거북이 아저씨', '거북이 형님'으로 통한다.
"넘한테 잘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하지. 근데 그게 마음대로 잘 안 되네. (허허) 그래도 항상 그 기적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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