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지금으로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과연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곳까지 찾아와 선생께 길을 묻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그런 갈급함을 보여주는 거 아닐까요. "뭘 물을지 대충 짐작이 가고 나도 이렇다 할 대안이 없어서 웬만하면 안 만나는데 굳이 오겠다고 하면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고 미리 말합니다. 현재로서는 아무것도 준비되거나 내놓을 만한 낙관적 전망도 없다는 걸 내가 먼저 실토하죠(웃음), 그래도 오겠다고 하면 와서 함께 얘기해보자 하죠."
내가 문학하는 사람이기도 해서 MB 정권에서 박근혜 정권까지 특히 문화부 장관이 누구인지 관심이 많았죠. 기울어진 운동장, 곧 문화 헤게모니 전투의 기동전 본부일 수도 있는 문화부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MB 정부가 들어섰을 때 문화부는 10년 좌파 정부를 견뎌낸(?) 부처였습니다. DJ 때 신참으로 들어온 행정관들이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고참 부장, 국장급이 돼 있는 문화 헤게모니 진지전의 대본영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아니겠어요.
MB 정권은 그런 진지 본부에 사령관만 하나 떨어뜨려놓고 진지를 탈환했다고 믿었고, 그걸 뒤이은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는 출범 첫날부터 전혀 출처와 근거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으니 답답할 수밖에. 그런 마당에 황교안 대표가 그 시절의 문화융성 정책에 점수를 주는 듯한 말씀을 하시니 나도 모르게 그만 울컥…."
거두절미하고 여쭙겠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정권 교체가 될 수 있을까요. "뉘가 알리오(웃음). 나는 절망적으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가능성 없어 보입니다. 경제라든지 외교에도 참상이 많죠. 이런 것들이 더 쌓이면 정권교체가 가능하다 기대(?)들을 하는데, 난 오히려 현 정권의 무능이 더 드러날수록 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수우파가 이렇게 약했나요. "원래 그랬어요. 배(船)는 큰데 이상한 짐을 잔뜩 실은 고물 배라고 할까. 대표적인 게 친일파 같은 짐이죠. 광복 후 제대로 청산이 안 됐잖아요. 그리고 한쪽으로 치우친 극단 세력. 아무리 우리가 미국과 동맹하고 있다고 하지만 맹목적 친미가 또 판을 바꿔버렸어요."
- 보수우파가 가진 게 많다 보니 잃을 까봐 침묵하는 건 아닐까요. "그것보다는 절박하고 직접적인 두려움이 있다고 봅니다."
- 그게 뭐죠? "공권력에 대한 공포죠. 재벌 총수들이 왜 권력 앞에서 당당하지 못할까요.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말을 갈아탄 기업들도 보이지 않습니까. 언제 저 사람들이 저쪽이었지 하는 게 보이잖아요. 물론 기업 입장에선 새로운 투자, 더 큰 거를 얻기 위한 방식일 수도 있지만 말이죠."
바꿔야죠. 하지만 뭘 채워 넣을지 하는 것보다 지난 시대에 놓쳤던 걸 챙겨가지고 보완하는 게 중요합니다. 완전성에 대한 믿음이랄까, 우리는 잘해왔다. 안주, 자만 다 버려야 할 거요. 우리가 그렇게 잘해온 것도 아니었고 완전한 것도 아니었고. 상대가 잘하는 것도 인정해주고. 배울 건 배우고 말이죠. 우파는 '치명적 안일함'이 있었어요. 가령 박 전 대통령은 감옥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마 지금도 자기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예요. 이미 바둑판은 기울어져 승패는 끝나고 흑백알 서로 줄 것 줬고 받을 것 다 받았는데 다시 판을 원상태로 뒤집겠다는 그런 억지로는 개혁보수니 뭐니 백날 해봐야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