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정치인의 이미지 (노태우등 전직대통령)

얼 골 2019. 9. 22. 16:48

정치인의 이미지는 단순한 ‘상’(象)이 아닙니다. 정치인은 선출직 공직자입니다. 선출직 공직자는 유권자의 표에 의해 당락이 결정됩니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유권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정치인의 이미지는 허상이 아니라 실체입니다.



정치인의 이미지는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오래 속일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을 잠시 속일 수는 있어도 여러 사람을 오래 속일 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인은 여러 사람을 오래 상대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치인의 이미지는 그가 가진 내면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외화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의 이미지를 한 글자로 표현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얘기를 들은 것은 2000년 김대중 정부 시절이었습니다



전두환은 ‘총’(銃)이었습니다. 총은 무서운 살상 무기입니다. 그는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고 5·18 항쟁에 나선 광주시민들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정권을 잡았습니다. 그는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철권 강압 통치로 정권을 유지했습니다.



노태우는 ‘물’이었습니다. 그의 별명은 ‘물태우’였습니다. 물의 특징은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모든 틈으로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는 친구(전두환) 뒤를 따라다니다가 대통령 자리에 올랐습니다. 1987년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 양 김 씨의 분열 덕분에 당선됐습니다. 물은 홍수를 이루면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리기도 합니다. 그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우리나라 정치 지형을 순식간에 바꿨습니다.



김영삼은 ‘깡’이었습니다. 그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글을 좋아했습니다. 박정희 유신 정권에 맞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고 했습니다. 정치적 위기를 언제나 ‘정면돌파’했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하나회 청산, 공직자 재산 공개, 금융실명제 등 고강도 개혁을 전광석화처럼 해치웠습니다. 깡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대통령 임기 말에 우리나라는 ‘깡통’을 차야 했습니다





김대중은 ‘한’(恨)이었습니다. 그는 그야말로 한의 정치인이었습니다. 독재에 억압당한 민주화의 한, 지역 차별의 한을 한 몸에 안고 있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그가 당선된 것은 ‘원통한 마음을 풀다’라는 해원(解寃)의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의 당선으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의 한도 풀렸고 호남의 한도 어느 정도 풀렸습니다.



대통령은 아니었지만, 대통령 선거에 세 번 출마했던 이회창 전 총재는 정계와 언론계에서 ‘창’으로 불렸습니다. 그의 이름 마지막 글자이면서, 원칙을 중시하는 대쪽 판사, 대쪽 국무총리와 ‘창’(槍)의 이미지가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바랍니다.© 제공: The Hankyoreh



© 제공: The Hankyoreh



© 제공: The Hankyoreh




© 제공: The Hankyor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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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은 ‘돌쇠’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습니다. 돌쇠는 의리의 사나이입니다. 박정희 전두환 독재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킨 충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런 별명을 얻었습니다.



저는 이회창 전 총재나 최형우 전 장관이 자신의 이미지를 바꾸는 바람에 오히려 손해를 봤다고 생각합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당시의 시대정신이 만약 법과 원칙이었다면 ‘이회창 대통령’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국민이 대통령의 덕목으로 ‘충직함’을 요구했다면 최형우 대통령이 탄생했을 것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전례에서도 비슷한 교훈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김대중 후보는 ‘뉴 디제이 플랜’을 가동했습니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자신의 약점을 덮기 위해 젊은이들과 함께 영상을 찍어서 집중적으로 배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선거에서 졌습니다.

5년 뒤 1997년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선 김대중 후보는 자신의 나이를 단점이 아니라 강점으로 뒤집는 홍보 전술을 썼습니다. 나이가 많으니 경험이 많고 경험이 많으니 그만큼 대통령으로서 준비가 잘 되어 있다는 논리를 편 것입니다.

1997년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디제이의 슬로건은 사상 최초의 정권교체를 성공시켰습니다. 외환위기로 국난에 처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에는 나이가 많은 ‘준비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국민이 동의했던 것입니다.




황교안 대표가 법무부 장관을 하던 2013년 9월 관상가 신기원 씨가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제가 2017년 2월 ‘정치 막전막후’ ‘황교안 대망론’ 편에서 소개했던 내용입니다.

“마의상법은 관상의 완성을 목소리라고 본다. 다른 모든 것이 좋아도 목소리가 나쁘면 완벽한 관상이 못 된다. 그런 예가 바로 김종필 씨다. 그는 세상에 없는 귀상이다. 그런데도 그가 최고 권좌에 못 오른 것은 탁성 때문이다. 반면 최근 공직자 중에서는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목소리까지 갖춘 귀상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황교안 대표가 관상가의 이런 말을 믿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에게도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욕심은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황교안 대표가 자신의 정체성, 즉 정치적 이미지를 절대로 바꾸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국민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국민의 판단에 따르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언론에서 황교안 대표를 제목으로 표현할 때 한 글자로 ‘황’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임금이라는 의미의 황(皇)이나 봉황의 암컷이라는 의미의 황(凰)도 있지만, ‘계획한 일이 뜻대로 되지 않고 엇나간다’는 의미의 ‘황’도 있습니다. 황교안 대표의 ‘황’은 결국 어떤 의미로 결론이 나게 될까요


성한용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