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조 바이든(77).

얼 골 2020. 11. 6. 13:58

2017년 1월12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에 대한 고별행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8년을 함께해 온 정치적 동지  바이든에게 '자유메달'을 걸어주고 있다. ⓒAP 연합 

 

 

어눌한 소년에서 정치 야망가로

바이든은 1942년 11월20일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의 가톨릭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중산층이던 바이든의 가족은 아버지의 실직 등으로 가세가 기울면서 1950년대 델라웨어주로 이주했다. 델라웨어는 바이든이 '7선'의 정치적 업적을 일군 곳으로, 유년 시절을 보낸 지역에서 대권 기반을 닦은 셈이다.

어린 시절 바이든은 심하게 말을 더듬는 습관 때문에 많은 놀림을 받았다. 그러나 소년은 굴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어눌한 말투를 극복하기 위해 책을 통째로 외우거나 입에 돌을 넣고 발음 연습을 했다. 바이든이 대선 과정에서 각종 '말 실수'를 쏟아낸 것도 이 같은 배경과 무관치 않다.

바이든은 델라웨어대학교를 졸업한 뒤 시러큐스대학 로스쿨에 진학했다. 대학생 시절 첫 번째 아내인 네일리어 헌터를 만나 결혼했고, 1969년부터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힘 있는 자를 대변하는 데 이질감을 느낀 바이든은 국선 변호인으로 활동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야망을 키웠다.

1972년 바이든은 첫 번째 정치적 승부를 펼치게 된다. 민주당 소속으로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한 그는 당시 정계 은퇴를 저울질하던 거물을 상대해 승리를 거둔다. 만 30세가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당시 미 역사상 다섯 번째로 어린 상원의원에 오른 바이든은 화려한 데뷔식을 치르며 정치에 입문했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바이든은 이내 커다란 시련에 부딪히게 된다. 바이든이 상원의원에 당선된 그해 12월18일, 쇼핑을 가던 가족들이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차량에 있던 아내와 딸이 현장에서 즉사했다. 당시 충격으로 바이든은 이제 막 닻을 올린 정계에서 은퇴하는 것까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남은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상원이 있는 워싱턴DC로 이사하지 않고 델라웨어에 머무르며 30여 년간 기차를 타고 직장과 집을 오갔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매일 왕복 350km에 달하는 장거리 출퇴근을 하는 가장이었던 바이든은 열차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또 승무원들과 오랜 세월 가족과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민심을 읽는 정치인으로 거듭났다.

바이든은 이후 1977년 영어 교사이던 질 제이콥스와 재혼해 두 딸을 얻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상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0년 5월 장남인 보 바이든이 뇌종양 진단을 받고 2년 뒤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보 바이든은 부친을 따라 법학을 전공한 뒤 검사로 근무했고, 이후 이라크 파병에도 자원하는 등 아버지에게는 각별한 아들이자 든든한 동반자였다. 가족 사랑이 더욱 각별했던 바이든은 장남의 사망으로 또다시 정계 은퇴를 고민할 만큼 큰 내상을 입었다. 이번 대선에서 차남 헌터 바이든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연루됐다는 의혹과 형수와의 염문설 등에 휩싸이며 대선 가도를 위협했을때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것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최종 선출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현직 대통령이 예측 불가능의 대명사인 트럼프였기 때문이다. 정치적 기반도, 미 정계에 빚도 없던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사업가 스타일을 그대로 드러내며 돌출행동을 이어왔다. 기존의 정치문법을 파괴하고 들어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환호하는 대중도 많았지만, 한편에선 '미국을 더 이상 이대로 둘 수 없다'는 반발심도 점차 커져 갔다. 바이든은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바이든은 경선 과정에서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을 부통령 후보로 지명하며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웠다. 미국 사회에서 각종 '유리 천장'을 깨고 정계에 입문한 해리스는 바이든이 갖지 못한 전투력을 대중에 강하게 각인시켰고, '오바마 향수'를 자극하며 바이든에게 표심을 집중시키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바이든은 해리스를 기용함으로써 오바마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국민들, 트럼프의 현재에 개탄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초접전 혈투로 이어진 대선 레이스에서 승기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