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은 말 그대로 직격이었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야구 인생을 되짚어 보고 속내를 들어보기 위한 질문들이었다.
팀과의 불화, 선수협 파동, 트레이드, 메이저리그 진출 실패, 사업 실패 등 다소 껄끄러운 질문들이 이어졌다. <2008년 7월 4일자 중앙일보 기사 참조>
그는 답을 피해가지 않았다.
답을 하며 가슴을 치거나 부여잡은 게 수십 번, 그만큼 응어리진 게 많았음이다.
그가 말했다.
“제 가슴속에는 뜨거운 불덩어리가 있어요. 가슴을 태우는 그런 불덩어리요. 아직도 그게 남아 있습니다.”
다시 부산에서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지 물었다.
“부산은 내 고향이고 뿌리입니다. 어머님이 계시고, 나를 만들어 준 곳이죠. 늘 훈훈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화 사람입니다,”
이어 경기수첩을 꺼내 보여주며 덧붙였다.
“최고의 선수였다고 최고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선수시절의 생각을 가지고 가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지금은 지도자의 길을 배우고 있습니다, 연습생인 셈입니다.”
‘지금은 한화 사람’, ‘지금은 지도자 연습생’이란 말 중, ‘지금은’을 몇 번 강조했다.
지금은 그렇지만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의미로 들렸다.
그러나 그는 생전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생전에 다시 돌아가지 못한 대신 지금은 동상으로 사직구장에 서있다.
그의 등번호 11번은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인터뷰를 마치며 돌아오기 전 찍은 사진을 몇 장 보여줬다.
“이마 주름은 갈매기 형상이구요. 눈가 주름은 갈매기 날개같구요. 심지어 말할 때 입술 모양도 갈매기 모양이네요.”
그것을 보며 그가 활짝 웃었다.
영락없는 갈매기 주름이었다.
갈매기 주름 짙은 그 웃음이 떠오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