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은 승려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승려치고는 형상이 괴이했다.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기르고 있었다. 이에 대해 그 자신은 이렇게 말했다.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해서요, 수염을 기른 것은 장부의 기상을 나타낸 것이다.
- 《계곡만필(溪谷漫筆)》
김시습은 작은 키에 얼굴은 오종종하고 못생겼다(자신이 그린 자화상이 있다). 게다가 머리에는 승려의 모자가 아닌 시커먼 벙거지를 쓰고 다녔다. 형색도 기인의 차림이었다. 승명을 ‘설잠(雪岑)’이라 했는데 깨끗함을 나타내는 ‘눈 설’ 자를 쓴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의 방랑과 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런 시를 남겼다.
10년 동안 떠돌이되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 보니
이내 몸은 도시 밭둑가의 쑥대로구나
세상 살아가는 길은 모두 험하고 위태로우니
아무 말 없이 꽃떨기나 냄새 맡고
지내는 것이 좋으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