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년,82세)
가치투자의 "대부" ... 워런 버핏의 "스승"
증권투자 체계적 정립.. "현명한 투자자"는 투자의 고전
대공항 거치며 20년 동안 연평균 수익률 20% 기록.
현존하는 당대 최고의 투자자는 워런 버핏이다.
그렇다면 버핏은 주식투자를 누구에게 배웠을까?
그 주인공은 바로 버핏이 나서기 전, 당대 최고의 투자자였던 벤저민 그레이엄이다.
사실 버핏이 컬럼비아대학을 선택한 것은 그레이엄이 그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레이엄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버핏이전의 버핏이다.
버핏의 스승이자 위대한 투자자들의 스승이다.
가치투자의 아버지이고, 증권분석의 토대를 쌓은 1900년대 당대 최고의 투자자였다.
오늘날 많은 투자자들이 선택하고 있는 가치 중심 투자법을 처음으로 유행시킨 사람이 바로 그레이엄이다.
덕분에 그는 가치투자의 아버지로 불리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그레이엄의 투자스타일은 큰 시세 차익보다는 원금 보전을 앞세웠다.
1894년 영국런던에서 사업가인 아이작 그로스바움과 도라 부부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그레이엄은 한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민했다.
1903년(9살): 부친이 사망하는 바람에 가세가 기울었고 그의 모친은 사업에 도전했다 실패했다.
어려운 집안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는 뛰어난 학업 능력으로 인해 전교 상위권의 성
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불운은 이어져 전산 처리 과정의 오류로 목표로 하던 컬럼비아대학 대신 뉴욕대학에 진학했다.
이후 자퇴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컬럼비아대 총장의 도움을 받아 장학금을 받고
1914년(20살)에 컬럼비아대학을 졸업 월가로 뛰어든다.
1919년(25세): 60만달러의 연봉을 받아 월가의 주목을 받았다.
1926년(32세);그레이엄- 뉴먼 투자회사를 설립.
1936~1956년(42세~62세); 그레이엄-뉴먼 코퍼레이션은 연평균 수익률 20%를 기록했다.
결혼생활
총 세번의 결혼을 한다. 세번 모두 이혼을 하고 노년에 이르러서 진정한 짝 말로를 만나게 된다.
첫번째 아들 아이작 뉴턴을 유양돌기염으로 떠나보내고 둘째 아들 뉴턴을 낳았으나 한국전에 참전한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셋째 아들 벤저민 주니어는 캘리포니아 의대의 의학박사로 인권운동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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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격(富格)이다.
얼굴이 꽉 차있으며 특히 눈동자는 점을 찍어놓은 듯한 점칠안이다.
그레이엄의 이마를 봐라
얼마나 좋은 이마인가
이런 이마가 머리가 좋다.
그래서 인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공부를 잘했다고 한다.
또한 이런 이마는 인덕이 좋다.
아르바이트를 하던중 컬럼비아대학 총장의 도움으로 장학금을 받고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레이엄의 아버지는 9살에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위의 사진으로는 확인을 하지 못하겠다.
그레이엄은 결혼을 3번하고 자녀가 죽거나 자살하였다.
그럼 그레이엄의 어디를 보고 알 수 있는가?
그레이엄의 어미(눈꼬리)가 처져 있으며 처첩궁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사진으로 봤을때 오른쪽 어미부분에 홈이 깊다.
이런 경우 결혼운이 좋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녀궁(남녀궁)에 관한 것은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거나 나이가 들면 누당부분이 대체적으로
깨끗하지 못한경우가 많다.
위의 사진이 몇살때 찍은 사진인지는 몰라도
사진으로만 판단했을 경우 남녀궁(자녀궁)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그레이엄은 나무랄데 없는 부격이다.
하지만 상은 부격이어도 결혼운은 순탄치 못하였고 자식또한 병으로 죽거나 자살하였다.
이렇듯 완벽한 상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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