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마이산 이갑용 처사

얼 골 2018. 5. 3. 17:19

             


[진안 마이산] 탑사, 이갑용 처사 - 지성이면 감천이다

익산장수 고속도로의 '진안마이산 휴게소'에서 바라본 마이산
마이산을 처음 본 사람은 대개 놀라게 되어있다. 우리 눈에 익숙한 한국산의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다. 아무리 보아도 한국산 같지 않다. 조선 태종이 '산이 흡사 말의 귀를 닮았다.'라고 하여 마이산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마이산은 전국의 명산들 중 가장 기(氣)가 센 산이라고 한다진안 마이산 탑사에는 원래는 120 여기의 석탑이 있었는데 지금은 80 여기 밖에 없는 이유는 관광객이 사진을 찍다 부주의로 부딪혀 무너뜨렸거나, 관광객이 스님들의 눈을 피해 석탑을 밀어 보았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단 한기도 무너진 적이 없다고 한다. 나무가 부러지는 강풍이 불어도 석탑은 끄떡이 없었다고 한다. 공든 탑이 무너질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이갑용 처사가 현대의 건축공학을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마이산 석탑의 비밀은 기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 있는 것이다. 석탑들을 보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고사가 생각이 난다


역고드름

진안 마이산 탑사의 신비 중의 하나가 역고드름이다. 겨울철에 마이산 탑사에서 정화수를 떠 놓으면 얼음이 하늘로 치솟는 현상이 생긴다. 이것이 역고드름이다. 최대 20~30cm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이것이 기도자의 정성에 하늘이 감응한 것이라는 사람들도 있다






이갑용 처사는 1860년 3월25일 오수 둔덕리에서 효령대군의 15대손으로 태어나셨고 어려서부터  그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는 부모의 상을 당하여 묘옆에 움막을 치고 3년간 시모상을 지낸후 한국의 영산을 두루 다니다가 25세에 마이산에 들어와 솔잎으로 생식하며 수도하다가  신의 계시를 받고 마이산의 신비의 탑을 쌓게 되었다

 우리 민족의 수난의 역사와 모진 자연의재앙 앞에서 흔들려도  넘어 지지 않는 신비함을 지니고   2012년 금년에도 2번의 강한 태풍으로 정이품송이 가지가 잘리는 등 곳곳에  문화재 귀중한 유적손실되었지만 마이산 탑들은 태풍의 중심에서도 쓰러지지 않아  신비의 탑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은수사는 이성계가 새 왕조를 꿈꾸며 기도한 곳이다. 기도 중에 마신 물이 은같이 맑다 해서 은수사(銀水寺)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기도의 증표로 심은 나무가 청실 배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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