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

대행스님 (인연을 끊고)

얼 골 2019. 5. 4. 13:58

인연을 끊고

 70. 헌인릉 사당 근처에서 지내시는 동안 스님께서는 그간에 체득하신 것들을 다시 점검하시는 한편 무형의 힘을 획인하고 보완하는 일에도 몰두하셨다. 스님께서는 헌인릉 주변 수십 리 안팎에 사는 사람들을 점검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 당시 스님께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신 것은 질병이었다. 스님께서는 이미 수많은 질병의 고통을 목격하셨고 생로병사의 끊임없는 사슬을 처절하리 만큼 경험해 오신 터였다. 스님께서는 한동안 낮이면 산마루에 올라 가셔서 스스로 터득하신 이 법을 점검하시느라 시간을 보내셨고 밤이면 마음법이 질병에 대해 어떤 효과를 낳게 되는지 확인하셨다.

 

71. 스님께서 어느 때 이렇게 회고하신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헌인릉 인근을 떠돌 때의 경험은 이루 다 필설로 말할 수는 없느니. 그것을 이야기 해도 믿어 줄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번은 거대한 용이 천변만화를 부리는데 참으로 장관이었다. 입에서 수없이 여의주를 토해 내는데 그게 모두 줄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때 거기서 문득 '용이 용이 아니라 한생각의 나툼'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그 용이 하늘로 치솟으며 거대한 불기둥을 이루는데 불기둥 정상에 만(卍)자가 떠받쳐 있는 게 보이면서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하더니 온 천지가 불바퀴라 느끼게 되었다."

 

72.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한번은 눈앞에 전개되는 온 천지에 뚜껑이 덮혀 있더니 그것이 서서히 열리자 깊고 검푸른 심연이 보이면서 소용돌이치는지라 실로 장관이었는데 문득 느껴지기를 , 저것을 물로 보면 건너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경험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하기 조차 쉽지 않다."

 

73. 스님께서 헌인릉 근처에 머무신 지 일 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스님께서는 심한 고초를 예감하시고는 사당에 앉아 묵연히 정진을 계속하셨다. 한낮이 되었을 때쯤에 인근 지서의 경찰관이 들이닥쳐 스님을 연행하였다. 능지기가 여자 공비로 오인하여 신고를 했던 것이다. 스님께서는 모진 취조에 시달려야 했지만 식음을 전폐한 채로 유치장에서 밤낮을 참선으로 조용히 보내셔싸.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고 취고 경관은 하루가 지나고부터는 심하게 굴지 않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스님은 풀려나셨다. 노량진 경찰서에 의뢰한 신원 조회에서 이상이 없다는 회신이 왔던 것이다.

 

74. 스님께서는 이 일로 이제 헌인릉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는 길을 나서셨다. 그러다가 어느 마을 어귀에서 어머님과 마주치게 되셨다. 스님의 어머니께서는 노량진 경찰서의 신원 조회 덕분에 딸의 행방을 아시고는 단숨에 달려오셨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님께서는 딸의 처참한 몰골을 보시자 그만 까무라치고 마셨다. 당시 스님의 모습이야말로 사람의 몰골이라고형언키 어려울 만큼 처참했던 것이다.

 

75. 스님께서는 어머님을 가까운 오두막 집으로 옮겨 구완하셨다. 스님께서는 이틀을 어머님 곁에서 묵으셨다. 그러다가 스님의 아우 되시는 분이 소식을 듣고 달려오시자 어머님을 부탁하시고는 다시 길을 떠나셨다. 그때 스님께서는 나중에 사람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스님께서는 헌인릉 생활을 뒤로 하고 동쪽으로 방향을 잡으셨다. 스님의 어머님께서는 그날의 충격으로 병을 얻어 몇 년 뒤에 세상을 하직하고 마셨다.

 

76. 스님께서 회고하셨다. "그때 내 몰골이 얼마나 처참하게 보였던지 어머님께서 너를 보시자 그만 몸을 비틀고 쓰러지셨다. 하기야 피골이 상접해서 뼈만 남았기에 겨울 혹한이 와도 동상에 걸리지 않았고 여름 무더위에도 썩어 들어갈 살 한 점 없었으니 오죽했겠는가. 게다가 전신이 진흙투성이에 다 째지고 터진 자리엔 피가 말라 붙었고 입은 옷마저 찢기고 헤어진 몰골이었으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님께서는 피를 토하시기까지 하셨는대 그분을 놓아 두고 다시 떠났던 것이다. '어머님! 제가 정말 사람이 되어서, 어머님의 진짜 자식이 된다면 다시 오겠지만 그렇게 못 된다면 다시 못 오리다.' 하고는 돌아섰다. 속으로는 '9년만 있다가 인간이 되어 다시 오리라.' 라고 했다."

 

77. 스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그때 어머님께서 옷을 두 벌 주셨는데 산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남에게 주고는 산으로 올라 갔다가 가랑잎 밟히는 소리에 그만 나도 모르게 '어머님의 손을 놓고…….' 라는 노래를 부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는데 일이 그렇게됐으니 어머님께는 얼마나 잔인한 일이 되었던지​……. 그렇게 떠났는데 어머님께서는 그때의 충격으로 고생하시다가 육신을 벗으셨다. 몇 년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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